신원 확인이 어려운 ‘랜덤채팅 어플리케이션(앱)’의 특성을 악용한 범죄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일 경기도 오산에서는 30대 남성이 채팅앱을 통해 만난 20대 여성을 목 졸라 살해했다. 지난달 29일 광주에서는 20대 남성이 채팅앱을 통해 만난 여고생에게 자신을 성매매 단속 경찰관이라고 속인 뒤 협박해 성폭행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을 겨냥한 성매매 알선 등 성범죄가 채팅앱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규제할 마땅한 방안이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일보가 20일 스마트폰 앱스토어에 ‘랜덤채팅’을 검색해보니 수백 개의 채팅앱이 나열됐다. 이 중 다수는 가입 시 본인 인증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한 채팅앱에 ‘중3 여성’으로 닉네임을 설정하자 50여분 만에 20개가 넘는 메시지가 수신됐다. 보낸 이들은 20~40대 남성이라 소개하며 성희롱 발언을 하거나 성매매를 권유하기도 했다. 자신의 신체 일부 사진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경찰청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단속을 벌인 결과 채팅앱에서 발생한 성매매 사건은 총 3665건으로 1만1414명이 검거됐다. 이 중 청소년 대상 성매매 사범은 863명에 달했다. 여성가족부의 최근 성매매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매매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74.8%가 ‘채팅앱 등을 통해서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채팅앱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채팅앱들은 대부분 본인 인증을 하지 않아 개인정보가 남지 않는다. 회원 간 대화도 저장되지 않으며 2015년부터는 채팅앱의 화면 캡처 기능도 제한됐다. 채팅앱 측 관계자는 “일부 사용자들이 대화내용 캡처 화면을 악의적으로 활용해 협박하는 경우가 있어 정상적인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랜덤채팅 앱의 경우 공개된 게시판 등에서 이뤄지는 성매매 알선이나 유도 등은 심의할 수 있다”면서도 “개인 간의 대화는 통신보호비밀법상 심의위원회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채팅앱을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채팅앱을 통한 성매매 등 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만큼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명선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여가부 등에서 채팅앱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채팅앱의 운영을 신고제가 아닌 등록제로 바꾸고 행정처분을 받으면 동일인 명의로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채팅앱 등에서 발생하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 범죄를 규제하고 상시 감시하는 전문적인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