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차명 부동산 소유권, 원소유주에 있다” 재확인

입력 2019-06-21 04:05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뉴시스

다른 사람 명의로 등기(명의신탁)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차명 부동산이라 하더라도 그 소유권은 원래 주인에게 있다고 대법원이 재확인했다. 불법적인 차명 부동산을 인정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과 거래 안정성을 더 중시한 기존의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다만 대법관 사이에서도 불법적 부동산 거래 행태 근절을 위해 소유권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제시되는 등 이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부동산 실소유자 A씨가 이 부동산 명의자인 B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인 A씨 손을 들어준 원심을 확정했다. 원고 A씨의 남편은 1998년 농지를 취득한 뒤 농지법 위반 문제가 생기자 B씨의 남편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했다. A씨는 2009년 남편 사망으로 이 농지를 상속받았고, 이후 B씨의 남편이 사망하자 B씨를 상대로 명의신탁된 농지의 소유권 등기를 자신에게 넘기라며 소송을 냈다.

이 사건 쟁점은 명의를 다른 이에게 넘긴 실소유자의 부동산을 불법원인급여(불법적인 이유로 제공된 재산)로 볼 것인지 여부였다. 불법원인급여로 볼 경우 민법상 반환청구가 불가능해진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명의신탁 행위가 부동산실명법 위반이라고 해도 원소유자의 소유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 하급심(1·2심) 법원도 이 판례에 따라 A씨 손을 들어줬고 B씨는 상고했다. 대법원은 판례 변경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13명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올렸다. 지난 2월 공개 변론을 열어 의견도 수렴했다.

결론은 기존 판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재판부(9명 다수의견)는 부동산실명법의 규정과 입법취지, 일반 국민의 관념, 재산권의 보호 등을 따져봤을 때 차명 부동산이더라도 실소유자에게 귀속시키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부동산실명법의 애초 취지가 명의신탁 부동산의 실소유자를 찾아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재판부는 또 “부동산에 대한 본질적인 재산권까지 박탈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관념에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명의신탁을 한 원소유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해서 명의를 빌려준 쪽에 소유권을 주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너무나 오랜 세월에 거쳐 이뤄져 온 차명 부동산 거래 관행을 판례 하나로 바로 변경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조희대·박상옥·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부동산 명의신탁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이라면서 “부동산실명법 제정 20년이 지난 현재 명의신탁 불법성에 대한 공통 인식이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동산 명의신탁 규제 필요성과 부동산실명법 한계에 깊이 공감하지만 법원의 판단이 아닌 입법적 개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