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롯데 뷰티앱 6개월 만에 접어… 신동빈 강조 ‘빠른 실패’ 첫 사례

입력 2019-06-20 18:56 수정 2019-06-20 21:22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실패하더라도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먼저 경험해보는 것 자체가 큰 경쟁력”이라며 ‘빠른 실패’를 독려했다. 롯데이커머스사업본부가 선보인 색다른 시도 ‘모게요’ 앱은 빠른 실패의 첫 사례가 됐다. 사진은 ‘모게요’를 실행하고 있는 모습. 롯데쇼핑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빠른 실패’(Fast Fail·패스트 페일)가 롯데 유통부문에서 처음 나왔다. 사원, 대리급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이 만들어 낸 뷰티앱 ‘모게요’가 출시 6개월 만에 서비스를 접는다. 내부에선 ‘망한 사업’이라는 비판 대신 ‘패스트 페일’이라는 긍정 평가가 나온다. 투자 등에 있어 보수적이었던 유통 대기업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빠른 의사결정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일 롯데쇼핑에 따르면 지난 1월 론칭한 ‘모게요’가 다음 달 15일 서비스를 끝낸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이용자 수가 많지 않아 패스트 페일 차원에서 앱 운영을 종료하기로 했다”며 “이용자들에게는 환불 계좌를 받아 적립금을 보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통 대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사업을 접는 일은 흔치 않다. 보통 사업 구상 단계부터 오랫동안 준비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걸 목표로 한다.

하지만 유통 환경이 온라인 중심으로 급속도로 옮겨가면서 대기업들의 이 같은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지난해부터 롯데, 신세계 등 ‘유통 공룡’들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한다고 했을 때 시장 반응이 회의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의 ‘모게요’ 출시와 폐지는 이런 시선을 뒤엎는 결정으로 풀이된다. ‘모게요’는 시작부터 대기업 색체가 전혀 없었다. ‘모게요’를 만든 TF팀은 대리·사원급 직원 7~8명이 팀을 이뤄 기민하게 움직이는 ‘애자일(agile)’ 조직이었다. 보통 애자일 조직은 IT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주로 활용한다. 빠르게 실행하고, 부담 없이 수정하고, 실패 또한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게 이 조직의 강점이다.

‘모게요 TF팀’은 화장품을 좋아하고, 뷰티 제품에 대한 평가를 즐기는 15~25세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이 앱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지만 이용자를 대거 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모바일 플랫폼의 생존은 이용자 수 확보에 달려 있다. 모게요 TF팀은 이 부분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폐지를 결정했다.

TF팀의 결정은 신 회장의 신년사 메시지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신 회장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공보다는 ‘패스트 페일’을 독려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비록 실패하더라도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먼저 직접 경험해보는 것 자체가 큰 경쟁력이 된다”며 “작은 도전과 빠른 실패를 쌓아가 환경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해 나가자”고도 했다. ‘모게요’의 출시와 폐지는 이에 딱 적합한 사례인 셈이다.

사드 보복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롯데그룹의 이런 과감한 변화는 유통업계 전반에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본력을 가진 롯데가 조직 쇄신까지 이룬다면 이커머스 시장도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며 “롯데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