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일 관계 개선 정치적 타협 모색하지만 변수 많아

입력 2019-06-19 18:44 수정 2019-06-19 20:59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9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뉴시스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민간기업의 기금 조성방안을 제시하면서 한·일 관계 회복의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정부 제안은 대법원 판결을 우회해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는 방안이지만 변수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정상 간 담판을 짓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화해·치유재단 청산 문제로 삐걱거리던 한·일 관계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파국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후 7개월여간 양국은 원칙적 입장만 내세운 채 별다른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경제협력협정(청구권협정)에 규정된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법원 판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이 요구한 중재위원 직접 지명 시한을 하루 넘긴 19일 정부가 양국 민간기업 간 기금 조성을 통한 해결방안을 새롭게 내놓은 것이다.

관건은 이번 제안이 한·일 간 사전 조율이 이뤄진 것인지, 아니면 G20을 앞두고 정부가 급하게 내놓은 ‘벼랑끝 수’인지에 달려 있다. 양국의 물밑 조율 과정을 거쳤다면 한·일 정상회담에서 타결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벼랑끝 제안이라면 한·일 관계는 이전으로 돌아가 경색 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이번 제안 내용이 올 초 한 언론에서 보도됐을 때 “정부와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기금이란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다시 이 카드를 꺼낸 것은 그만큼 상황이 어려운 게 아니냐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엇갈리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외무성도 사실 이 문제로 갈등을 키우는 건 원치 않고 있다”며 “한·일 정부가 사전 조율한 것으로 이해된다. 서로 한발씩 물러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조치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이 교수는 “한·일 관계가 비상 상황이었다. 최악은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이 진행되고, 현금화가 되면 일본이 경제 보복 조치를 하고 갈등이 고조되는 것”이라며 “정부도 우리 책임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선 만큼 최악의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개인적인 배상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일본 정부가 극도로 꺼리고 있다”며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서 갚으라는 건데, 일본 측이 안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도 “일본 정부가 재판 결과 자체에 문제 제기를 했는데, 재판 결과를 승복하고 일본 기업이 돈을 지불하면 중재에 응하겠다는 정부 제안은 일본의 기존 입장을 완전히 철회하라는 것”이라며 “이번 발표만 보면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명분을 충분히 정부가 줬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일본이 수용하기에는 부족한 제안이라는 취지다.

이번 제안이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화해·치유재단 설립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 출연금이 민간기업 기금으로만 바뀌었을 뿐 고령 피해자의 권익실현을 앞세워 피해자 의견수렴 없이 정부가 밀어붙인다는 점은 판박이 구조다.

정부는 일본에 한·일 정상회담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국이 사실상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정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이날 “한국 측에서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 결실을 볼 수 있는 회담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강준구 박재현 이상헌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