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의 총아로 주목받는 핀테크 기업들이 ‘닮은꼴’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금융계좌 조회와 자산관리, 보험·투자상품 가입, 아파트 관리비 납부 서비스 등이 잇따라 쏟아진다. 기본 데이터가 같은 탓에 어느 업체의 서비스든 큰 차이가 없다. 출시 시점도 비슷해 누가 ‘원조’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19일 “서로 자신들이 최초라고 말하지만, 여러 회사가 유사한 서비스를 비슷한 시기에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는 지난 18일 아파트 관리비 조회·납부 서비스를 시작했다. 토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자신의 아파트 관리비가 얼마인지 확인하고 납부할 수 있는 서비스다. 관리비 납부 서비스는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로도 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는 최근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여행자·자동차보험 등 ‘미니보험’ 가입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미니보험 가입은 토스 등 다른 핀테크 업체들이 제공하던 서비스다. 토스와 카카오페이는 최근 은행, 카드사 등에 흩어진 금융자산을 통합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는데, 금융사 통합 조회는 핀테크 서비스 ‘뱅크샐러드’ ‘브로콜리’ 등이 원조다.
핀테크 기업의 ‘판박이 확대’는 대형 핀테크 업체(빅테크)의 금융 플랫폼 전략과 관련이 깊다. 간편송금·결제 서비스 등으로 이용자를 끌어모은 빅테크들이 다양한 연계서비스로 시장지배력을 굳힌 뒤 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하려 하기 때문이다. 빅테크 간 경쟁 속에서 ‘사각지대’도 생긴다. 뱅크샐러드나 토스의 통합 조회 서비스에서는 카카오뱅크의 내역을 확인할 수가 없다. 반면 관계사인 카카오페이에서는 카카오뱅크 계좌 내역을 조회하고 송금도 할 수 있다.
여기에다 핀테크 기업들은 서비스 차별화가 쉽지 않자 최근 앞다퉈 ‘마케팅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고객 확보를 위해 각종 이벤트를 앞세운다. 간편결제 서비스 업체들은 이용 금액에 따라 일부 액수를 돌려주는 페이백, 캐시백 이벤트를 열고 있다. 토스는 ‘내 차 시세조회’ 광고 모델로 영화배우 원빈을 기용하기도 했다.
‘핀테크 판박이’ 현상의 1차 원인으로는 ‘금융 규제’가 꼽힌다. 신용정보법 등 각종 규제로 촘촘히 막혀있어 핀테크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한 업체의 서비스를 다른 업체가 곧바로 따라잡을 수 있는 취약한 경쟁력 자체가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플랫폼을 표방하는 핀테크 업체의 서비스에 얼마나 차별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오픈뱅킹, 마이데이터 등 금융 관련 규제가 해제되면 대형 금융회사들과 같은 조건에서 직접 경쟁해야 하는데, 살아남을 핀테크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핀테크 산업이 성숙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회사와 빅테크, 핀테크 기업이 경쟁을 거듭하다가 도태되는 순서대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