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가 작가가 되기까지… 담백한 성장 서사

입력 2019-06-22 04:03
소설가 김세희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자신의 첫 장편 ‘항구의 사랑’을 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그때는 사랑할 능력이 많았던 것 같다.”

여고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항구의 사랑’(민음사)을 낸 김세희(32·사진) 작가에게 당시가 어땠는지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김 작가는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친구들이 아이돌 가수를 주인공 삼은 이야기 ‘팬픽’을 많이 썼고, 나도 가수 조성모를 좋아해 그를 주인공으로 픽션을 썼다”고 말했다.

항구의 사랑은 여고생인 주인공 ‘나’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줬던 세 여자아이와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고향 전남 목포에서 여고를 다닌 작가는 “등단하기 전인 2013년부터 거의 5년간 여러 차례 쓰고 또 고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반 정도는 내 경험, 반 정도는 허구”라고 설명했다.

배경은 2000년대 초반 여학생들 사이에 팬픽 문화가 번지던 때다. 소설 속 내 주변에는 칼머리를 한 터프한 여자아이를 동경하는 여자 친구들이 꽤 있다. 나 역시 동아리 한 선배를 좋아한다. 작가는 “그땐 아이돌 가수를 사랑했고 때로 여자 친구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다. 지금의 나를 이룬 그 경험들을 소설로 꼭 쓰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은 당시 나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더 이상 아이돌 가수의 팬이 아니다. 그는 “이제 나는 가수를 좋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웃음). 과거엔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었는데 이젠 그렇지 못하다. 아마 아이돌에 대한 열광이나 동성애적 감정을 현실이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이 되면서 차츰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때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소설 마지막엔 이런 문장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에 관해서 썼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이 질문을 성장의 과정으로 여긴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이야기를 쓰면서 깨달은 건, 소설은 경험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해석이다.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의 해석, 최선의 이해”라고 한다.

항구의 사랑은 미성숙한 감정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소녀들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다. 한 소녀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담백한 성장 서사다. 2015년 등단한 작가는 젊은작가상을 수상했고 소설집 ‘가만한 나날’에서 사회 초년생의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해 호평받았다. 현재 창비 홈페이지에 장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를 온라인 연재 중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