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주권 세우기 <3>
신앙의 여덟 번째 단계는 아브라함의 할례다. 하나님은 예배에 성공한 아브라함에게 할례라는 새로운 미션을 주셨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 17:14) 하나님은 우리가 할례받지 않으면 “내 언약을 배반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뜻일까.
그 뜻은 신약에 선명하게 나온다. 육신의 옷을 벗는 것인데, 세상적으로 사는 삶을 끊는다는 의미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이렇듯 성경은 예수 믿고 예배에 성공한 이들이 육신의 옷을 벗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육신의 옷이란 육신과 안목의 정욕을 갖고 이생을 자랑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한다면 이 땅에서 입어야 할 옷이 있다. 그리스도라는 옷이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그런데 새 옷을 입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방해요인이 있다. 바로 욕심이다. 욕심이란 세상에서 출세,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 마음의 중심에는 자신이 주인이며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나타내기를 원하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공이나 출세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만 출세나 성공이 그리스도인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귀와 권세가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9단계 훈련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는 남을 위해 기도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사람을 살려내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연애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땅을 위해 중보기도 했다.
죄악을 행했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린 불과 유황으로 그날 밤 모두 죽고 말았다. 그렇지만 중보기도 덕택에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창 19:29)
이런 이유로 순복음삼마교회 성도들은 중보기도를 철저히 훈련한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을 갖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있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지도한다. 처음에는 억지로 기도하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순복음삼마교회 아동부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기도모임을 갖는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국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을 위해 2시간씩 중보기도 한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아이들도 토요일 성령불 기도회에 참여해 기도하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성령이 주신 마음에 순종하며 원수를 사랑할 때 그때부터 기도가 탄력이 붙고 능력이 나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신앙은 열매가 있는 실체다.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자신의 아내를 빼앗겼을 때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비멜렉에 나타나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모두 죽는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 20:7)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선물로 새로운 칭호를 주셨다.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불러주신 것이다. 선지자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자다. 교제란 하나님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칭해주신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에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중보기도를 실천하면서 유익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 주님의 마음을 갖게 됐다. 둘째, 성령이 임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성도들에게 생기게 됐다. 셋째,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미움이 사라지고 분열의 영이 떠나갔다. 이것이 중보기도의 능력이다.
중보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다. 일례로 동성애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기도한다면 동성애자들이 성중독에서 돌이키고 그들의 삶이 회복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들이 성중독이 아닌 예수를 통해 만족하도록 축복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자세로 중보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 한반도를 위협하는 북한 핵과 생화학무기, 주체사상, 무신론 사상, 반기독교 이데올로기를 대적하기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 한다. 북한 주민에게 가짜 평화가 아닌 진짜 평화인 종교의 자유가 임하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