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가명·57)씨는 지난해 9월 떠난 딸을 ‘베스트 프렌드’라고 불렀다. 대기업 4년 차 직장인이던 딸은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6개월 휴직 신청을 했지만 “빨리 나와 달라” “지금쯤이면 괜찮아지지 않았느냐”는 회사 측 요구에 3개월 만에 복직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딸은 김씨 곁을 영영 떠났다.
김씨가 기억하는 딸은 늘 쾌활했다. 모두에게 친절했고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 종종 “우울하다”는 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마저 밝았다. 그러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결국 극심한 우울감과 공황장애가 딸을 삼켰다.
희망을 봤던 엄마와 작별을 준비했던 딸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네 가족이 모여 아침밥을 먹었고 낮에는 모녀가 나란히 교회도 다녀왔다. 딸이 몸을 던지기 불과 한 시간 전에는 온 가족이 TV 앞에서 예능 프로를 보며 웃었다. 방으로 들어간 딸은 메모지에 “엄마, 아빠 죄송해요. 더 견딜힘이 없어요”라는 짧은 유언을 남겼다. 회사에는 교통사고로 말해달라는 걱정 섞인 당부도 있었다.
‘출근길. 심장이 격하게 두근거렸다’
‘업무 중 순간 컴퓨터 화면이 흐릿해져 앞이 안 보였다’
‘속이 매스껍고 토하고 싶은 기분이다’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
딸의 남은 일기장에는 자가진단의 흔적이 가득했다. 김씨는 “딸이 이겨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며 “병원에 가고 약도 먹더라. 심리 상담을 받은 뒤에는 좋았다더라”고 했다. 김씨는 그래서 당연히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직장 상사가 밉다는 딸의 투정도 적당히 타이르고 말았다. “딸에게 한 모든 말들이 후회되고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는 김씨의 코끝이 붉어졌다.
“떠난 딸의 방을 보는 게 무서웠다”
후회와 자책은 두려움을 키웠다. 김씨는 “딸의 방을 보면 너무 무서웠다”며 “아침에 눈 뜨면 근처 도서관으로 피신하다시피 도망쳤다”고 고백했다. 곳곳에 남은 딸의 향기를 맡을 때마다 ‘살아 있을 의미가 없다’는 마음이 불쑥 솟았다.
실제로 자살 유가족들에게는 고인을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2차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자살사망자 289명의 심리부검 결과를 토대로 낸 조사에서는 전체의 45.3%가 가족 중 자살을 시도했거나 사망한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은 일반인보다 우울증은 7배, 자살 위험은 8.3배 이상 높다. 2017년 자살사망자는 1만2463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살자 한명 당 평균 5~10명의 유가족이 발생한다고 추정하는데, 7명을 기준으로 추산해도 지난해 발생한 자살 유가족은 8만7241명이다.
지난 10년간 누적 자살사망자 14만1233명을 놓고 계산해보면 국내 자살 유가족은 98만8631명이나 된다. 약 100만명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셈이다.
“없는 자식인 셈 쳐” 위로를 가장한 말들
김씨는 딸의 자살을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이 가장 무서웠다. 딸의 죽음을 숨김없이 고백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도 큰 상처가 됐다. 김씨는 “가장 믿었던 직장 동료에게 사실을 털어놓자 조문을 오지 않더라. 위로의 말도 없었다”며 “(그 사람은) 아마 자살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 재수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짐작했다. 또 “사실을 말하면 그 이유에 대해서만 묻더라. ‘그냥 잊어’ ‘처음부터 없었던 자식인 셈 치라’고도 했다”며 “괜히 얘기한 것 같다는 후회가 남아 심장마비였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고 씁쓸해했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그동안 자살을 가족 간의 트러블 혹은 개인의 결점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며 “문제를 열어 놓고 밝은 곳에서 논의해야 한다.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맘껏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정애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에 대한 인식 자체를 변화시킬 공중보건적 교육이 필요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가 개선돼야 유가족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그조차도 감당할 수 없다면 상담을 권유하거나 동행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자조모임에서 찾은 희망
김씨는 최근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지역 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는 자조모임을 선택한 뒤부터다. 김씨는 “혼자 있는 순간에는 슬픔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라”며 “마냥 슬픔에 젖어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직접 인터넷 검색을 했다”고 말했다. 첫 자조모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김씨는 “모두가 반겨줬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 투정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회상하며 “그 후로 항상 기다리는 시간이 됐다”고 했다.
자조모임은 감정 공유의 장이었다. 김씨 역시 “첫 6개월 동안은 속 이야기를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는데, 자조모임에서는 이 과정이 당연했다”며 “뿐만 아니라 사후 행정절차나 부수적 문제 등의 해결 사례를 나눴고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자조모임을 통한 긍정적인 변화는 김씨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김씨는 최근 지역 가정지원센터에서 하는 개인 상담도 진행 중이다. 매주 인문학 강의를 듣고 주민센터 민요 수업에도 참여한다. 김씨는 “요즘 나도 모르게 자꾸 거울 앞에 선다”며 밝게 변화한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는 어딘가에서 앓고 있을 자살 유가족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힘듦에 취해있지 말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 역시 자조모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백 센터장은 “가족의 자살 사망 후 주변과의 갈등이나 트라우마에 빠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며 “이때 가장 위안이 되는 게 같은 아픔을 가진 유가족의 도움”이라고 짚었다. 이어 “영국의 경우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독려상담가 양성 과정이 있고, 일본에는 같은 유가족이 유가족 지원 센터의 상담 전화를 건다”며 “먼저 겪고 회복된 분들이 치유의 경험을 통해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고 직후 유가족은 경찰조사, 사망신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고 보험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 아주 복잡한 일에 두고두고 시달린다”며 “다양한 문제가 오랫동안 나타나기 때문에 자조모임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 역시 “유가족들에게 감정의 환기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전문 상담자보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