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도 제비

입력 2019-06-22 04:02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해안도로에 있는 우리 집에는 제비집이 3개 있다. 안거리(안채를 말하는 제주어)에 한 개 있고 밖거리(바깥채) 3곳 가운데 2곳에 각 한 개씩 있다. 4년 전 제주에 이주한 그해 밖거리에 제비가 날아와 한 개를 짓고 새끼를 부화해 나가더니 이듬해 안거리와 밖거리에 한 개씩 더 지어 3개가 됐다. 올봄 일찌감치 날아온 제비들이 밖거리 2곳에서 새끼를 치고 나갔고 안거리에 자리 잡은 한 마리는 아직 짝을 찾지 못해 번식을 못했다.

제비는 집을 지을 때 진흙과 풀, 나뭇가지 등의 검불을 재료로 사용한다. 비와 바람, 그리고 뱀과 같은 천적을 피할 수 있는 처마 밑 벽에 진흙을 발라 집을 지어 올린다. 콩알만 한 진흙을 물어오고 그 위에 검불을 붙이고 다시 진흙을 물어오고 검불로 다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면 어느새 토성 같은 제비집 형태가 드러난다. 제비집에 들어간 진흙과 검불의 양을 보면 머그컵 하나는 족히 된다. 도대체 콩알만 한 진흙을 몇 차례나 물어오기를 반복해야 둥지가 완성될까 경이롭다. 제비 한 쌍이 터를 잡고 부지런히 집을 지으면 3일에서 5일이면 한 채를 완성하고 암수의 금실이 좋아 산란이 성공하면 2주 내외 알을 품은 뒤 부화한다.

제비는 새끼가 부화하면 둥지를 지을 때보다 더 바빠진다. 우리 집에서는 보통 5마리 정도를 부화했는데 이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이 딱할 정도로 어려워 보인다. 모기, 하루살이, 파리, 실잠자리, 나비 등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을 잡기도 쉽지 않은데 5마리에게 먹일 양이면 도대체 얼마나 잡아 와야 하나. 국립산림과학원이 2009년 서귀포에서 제비둥지에 무인영상기록장치를 설치해 어미 제비가 새끼에게 먹이 주는 영상기록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어미 제비는 하루 평균 14시간 동안 350차례 새끼들에게 먹이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14시간×60분÷350회=2.4분. 어미 제비는 2분24초 만에 한 번씩 먹이를 물어다 줬다. 그것도 하루 14시간씩 새끼가 다 자라는 3주 동안.

이렇게 자란 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날은 마치 동네잔치라도 벌어진 듯 요란하다. 둥지에서 처음 날아야 하는 새끼들은 두려움에 머뭇거린다. 어미는 연신 둥지 앞에서 지지배배 울어대며 따라 하도록 독려한다. 이들의 이소(離巢) 행사에는 이웃 제비들도 찬조 출연한다. 집 마당에는 7~8마리 제비가 소란스럽게 둥지 앞을 스쳐 날아가며 새끼 제비를 유도한다. 드디어 한 마리가 날아 4~5m 앞 나뭇가지에 앉고 이어 다른 새끼들도 용기를 내어 둥지를 떠난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 행사다.

전문가들은 제비가 인가에 둥지를 틀게 된 시기가 인류가 취락을 구성하면서부터라고 추정한다. 사람을 피하는 일반 조류와 달리 제비는 사람 부근에 있으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천적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러나 인류와 공존하던 제비가 어느 시점부터 위기를 맞고 있다. 제비 개체 수는 주는 반면 인류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제비는 환경지표 종으로 관심을 받고 인류는 반환경 종의 길로 들어선 뒤부터다.

우리 집 안거리 제비집을 차지하고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은 지지배배 울어대며 구애 활동에 애가 탄 모습이다. 제비는 봄부터 여름 사이 2차례 번식을 한다니 어디서 ‘돌씽’이라도 한 마리 꾀어 종족 번식의 본능을 원만히 수행하고 강남으로 돌아가기를 응원한다.

박두호(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