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정점은 언제?… 통계청, 판정 못 내리고 “9월 재논의”

입력 2019-06-18 04:02

정부가 ‘경기 정점 선언’을 유보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기 순환기는 ‘저점→정점→저점’을 하나의 주기로 한다. 현재 한국 경제는 공식적으로 2013년 저점을 찍은 뒤로 아직 정점까지 도달하지 않은 상태다. 만약 정부가 ‘정점 시기’를 정하면 그 이후 경기가 꺾이는 것이 공식화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 경제가 2017년 2~3분기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정부는 판단을 연기했다.

통계청은 17일 국가통계위원회 경제분과위원회를 열고 경기 정점 여부를 판정했다. 통계청은 경기 동향지표와 국내총생산(GDP) 추이 등이 장기간 하락세를 보일 경우 경기 순환기 설정에 들어간다. 한국 경제는 공식적으로 2013년 3월 저점에서 시작된 ‘제11순환기’에 속해 있다. 이후 정부는 경기가 올라가다 꺾이는 시점인 정점을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 통계청은 현재 경기 상태를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가까운 미래(3~6개월)의 경기 상황을 나타내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최근 동반하락하자 정점 설정에 들어갔었다.

지표로만 보면 한국 경제의 경기 정점은 2017년 2~3분기로 추정된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17년 3~5월(101.0)과 2017년 9월(101.0)에 최고치를 찍고 하락세다. 전년 동기 대비 GDP 상승률을 보면 2017년 3분기(3.8%)가 꼭짓점이다.

그러나 통계청은 판단을 유보했다. 오는 9월 재논의하기로 했다. 경기 정점과 저점을 설정하기 쉽지 않다는 고민이 깔려 있다. 최근 경기의 상승과 하강 진폭은 과거보다 작다.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는 성장률이 크게 오르지도, 크게 떨어지지도 않고 있다. 진폭이 작다 보니 어디가 정점인지, 저점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만 봐도 2017년 3~5월 101.0을 찍고 계속 하락세를 보였는데, 통계를 보정하면서 2017년 9월도 101.0을 기록했다. 경기 정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늠자인 ‘꺾이는 지점’이 2개나 생긴 셈이다.

경기 정점을 설정하는 근거로 쓰이는 경제지표의 예측력도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행지수는 동행지수보다 먼저 가까운 미래의 경기 상황을 알려준다. 하지만 선행지수가 동행지수에 따라잡히는 등 경제지표의 예측력에 문제가 드러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선행지수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 정점과 그것을 설정하는 시기 사이에 검토할 기간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에서 경기 정점 시기를 정하고, 이걸 공식화하기까지 평균 36개월이 걸렸다. 통계청 관계자는 “제11순환기 경기 정점을 설정하는 데 걸리는 기간이 과거에 비해 짧은 점과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대비 GDP 순환변동치의 변동이 미미한 점 등을 고려했다”며 “향후 선행종합지수 개편 결과와 함께 9월쯤 경제통계분과위원회에서 경기 정점 여부를 재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가 경기 하강 공식화를 피하고 있다는 비판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표로 보면 경기가 꺾이는 2017년 2~3분기는 공교롭게도 문재인정부 출범 시기와 엇비슷하다. 정부가 내놓은 각종 경제정책을 두고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