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눈이 예리해졌다. 이젠 퀄리티를 넘어 노동 문제 등 작품을 둘러싼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펴보고 ‘품격 있는 콘텐츠’인지를 살핀다. 하지만 제작 현장은 아직 이런 요구에 발맞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노동 감수성은 작품의 품격을 가름하는 주된 요소가 됐다. 콘텐츠 질이 높아도 제작 과정에서 노동 감수성이 모자란다고 판단되면 눈총을 받기 일쑤다.
‘아스달 연대기’(tvN)가 그렇다. 극은 제작 단계부터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제작비만 540억원가량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데다 탄탄한 제작진과 장동건 송중기 등 화려한 캐스팅 소식이 함께 전해지면서다.
하지만 스태프가 연속 151시간30분 해외 촬영에 시달렸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여론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국내 드라마의 발전을 가늠케 할 극이었다는 점이 대중의 실망감을 더 부추긴 모습이었다. 지난 8일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주 68시간 자체 제작가이드를 준수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고 환경 개선 의지를 강조했지만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2월 종영한 ‘황후의 품격’(SBS)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하루 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폭로가 나오면서 무리한 설정으로 논란이 됐던 극은 현실에서도 막장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열악한 스태프 처우는 일일이 케이스를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고질병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노동 감수성이 극의 평가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된 건 시청자들의 수준 향상과 무관하지 않다. 김교석 TV칼럼니스트는 “드라마도 영화만큼 예산 규모가 커졌는데, 제작 관행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게 시청자 눈에는 허점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젠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도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결국 소비하는 상품이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닝썬 사건 등을 거치며 출연자에 대한 도덕적 검증 요구가 한껏 높아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철저한 사전 검증은 물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작진에게 더욱 정확하고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최근엔 예능 ‘작업실’(tvN)이 곤욕을 치렀다. 뮤지션들의 로맨스를 관찰 카메라에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출연진이었던 가수 남태현의 ‘양다리’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장재인과 남태현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일련의 잡음에 일부 팬들은 남태현의 활동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제작진은 논란이 불거진 당일 관련 내용을 축소 편집하겠단 입장을 냈다. 지난달엔 ‘프로듀스X101’(Mnet)의 한 연습생이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다시 한번 출연 연습생들의 전반적인 사생활 이슈를 점검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시청자의 적극적 태도가 향후 발전적인 콘텐츠 제작 환경을 이끄는 동력이 될 것으로 봤다. 정 평론가는 “제작진들도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기본적 욕구는 가져가되, 합리적인 과정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달라진 요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