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권영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적들

입력 2019-06-18 03:59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각종 경제 현안들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벌인 상상을 초월한 여러 작태는 일등삼성이 저지른 일등범죄인 것 같다. 오너의 편법 및 불법 승계에 올인한 범죄로 보인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 성분으로 인한 국민의 희생이 해결되기도 전에 가짜 줄기세포를 악용한 코오롱의 인보사 사태는 재벌 대기업들은 오너에 대한 충성과 돈벌이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수준의 대기업들에 나라 경제와 국민들의 생존권을 맡길 수 있을까. 이미 우리 경제는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4% 역성장했고, 수출증가율도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여기다 지난 4월에는 경상수지까지 적자였다. 내수 엔진이 꺼지고 간신히 수출이라는 단발 엔진으로 버텨오는 가운데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무역 환경 악화로 경제 전반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머지않아 쓰나미처럼 닥쳐올 인구절벽의 문제, 4차 산업혁명 급진전에 따른 급격한 고용악화, 가속화하는 경제·사회의 양극화 문제 등 중장기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대비책도, 정책효과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해결책은 구조개혁을 통한 인센티브 중심의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케 하는 것이다. 정상적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2016년 미국 타임지가 세계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한 시카고대학 교수 및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출신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의 명저 ‘Saving the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자본주의자들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에 공감할 수 있는 답이 있어 소개한다.

자유시장경제는 인류사회의 발전과 인간 삶의 조건을 가장 유익하게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번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을 지배하는 규칙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하부구조를 투명하고 견고하게 제정·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조직화된 기득권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로비와 유착, 도전 등의 위협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각별한 대처가 필요하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주체들에 의한 경제력 집중을 제한함으로써 기득권자들의 반시장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자본의 주체인 대기업들의 영향력은 물론 노동의 주체인 거대 노조들의 영향력도 포함된다. 자유시장경제를 정치적으로 폭넓게 지지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완비해야 하고,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환경을 조성해 국제적 경쟁 압력을 높여 기업들의 기득권을 축소시켜야 한다. 또 시장 참여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기득권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을 막는 것이 시장경제 원리의 정상화에 필수라는 대중적 홍보와 교육이 중요하다.

라잔의 주장을 한국 경제에 적용해보면 우리 경제에서 정상적 시장경제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첫째, 이미 반도체 경기 사이클에 의해 심각하게 타격받는 것이 증명된 경제력 집중 및 쏠림 현상을 가져온 재벌 대기업들의 구조적 기득권 문제다.

둘째는 노동권력의 기득권을 상징하는 대기업 노조들의 과격한 투쟁이 노동시장의 왜곡을 초래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미 수십일 넘게 국회가 정쟁을 빌미로 정치파업을 함으로써 구조개혁을 뒷받침할 입법 조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음에도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가장 심각한 기득권 정치세력이 문제다.

전세계 식자층의 사랑을 받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창립 160주년 특집 사설에서 200년 간의 영국과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시장경제의 건전하고 효율적인 발전을 위해서 정부는 반드시 기업 및 그 보스들로부터 거리를 둬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친기업이 아닌 친시장 (Pro-market, not pro-business)정책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권영준(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