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대표팀의 월드컵 준우승은 한국 축구사의 새 이정표가 됐다. 축구 자체를 즐기며 창의적 플레이로 그라운드를 누빈 젊은 선수들의 행보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의 화려한 등장에 20, 30대는 희열과 감동을 느끼며 함께 열광했다. 대표팀을 이끈 정정용 감독의 ‘자율 속 규율’ 리더십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취업난과 경제난, 수직적 상하관계의 직장생활에 지친 이들은 “대표팀을 보며 희망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16일 오전 1시 전국 곳곳에 마련된 거리응원장은 젊은세대의 흥분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비록 한국이 1대 3으로 역전패했지만 결승전에 오른 것 자체를 즐기며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젊은 세대가 감동한 포인트는 대표팀의 성적보다 과정이었다. 1999~2001년생으로 이뤄진 대표팀은 축구를 즐기며 훈련에 임하고, 경기 중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과거 ‘투혼’으로 상징된 한국 대표팀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취업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Y세대(밀레니얼세대로 현 20, 30대)는 이들을 지켜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는 반응이다.
취업준비생 손모(24·여)씨는 “취업준비 기간이 1년을 넘어 지쳐갔는데 선수들이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준우승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힘이 나더라”고 말했다. 이모(28)씨도 “세네갈전 때 지고 있는데도 이강인 선수가 ‘할 수 있다’며 다른 선수들을 다독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상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서울 강서구의 CGV등촌점을 찾아 결승전을 관람한 대학생 김모(22)씨는 “4학년이 되면서 취업 걱정에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막연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보다 어린 선수들이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보여준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이해가 바탕이 되고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으면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다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수평적 관계 속에 지시보다 이해를 강조하며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규율을 따르도록 독려하는 리더십이다. 정 감독은 훈련 기간 휴대전화를 사용하게 하고 가벼운 외출도 허락하는 등 선수들의 자유시간을 존중했다. 실제 선수들은 에콰도르와의 준결승에서 1대 0으로 이겨 사상 첫 결승 진출의 쾌거를 달성한 뒤 생수병을 들고 아버지뻘 되는 정 감독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권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규율을 스스로 지키며 경기를 즐기는 모습은 우리 세대가 꿈꾸는 문화”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2년 월드컵, 이번 U-20은 권위주의에서 탈피한 감독이 선수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한국의 조직문화는 상명하복, 위계서열 등을 강조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조직원의 동기 부여, 역량 강화를 위해선 기존의 문화를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방탄소년단, 봉준호 감독에 이어 축구에서도 젊은 세대가 선두주자로 서면서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세대가 등장하게 됐다”며 “기성 세대도 청년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게 되면서 세대 간 간극이 줄어드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예슬 이동환 모규엽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