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낸 것으로 확인됐다. 회의 직후 나온 공동선언문(코뮈니케)에 처음으로 채택된 ‘무역과 지정학적 긴장 심화’라는 문구를 넣자고 한 나라도 한국이다.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중국 입장에 노골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선을 긋고 나섰다는 평가다. 미국과 중국이 각국 정부·기업에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적극적 중립’ 움직임을 보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12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8~9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미·중 무역갈등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당사자인 G2(미국 중국)가 참여한 자리에서 회원국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직접 표현을 피하면서도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을 표명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보호무역주의를 동원해서라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쪽에 섰다. 반면 중국과 일본 독일 등은 세계무역기구(WTO) 시스템에 따른 다자 간 자유무역주의를 강조하며 ‘보호무역주의 배격’을 주장했다.
논쟁과 눈치보기 속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무역갈등 장기화가 세계 경제에 끼칠 위험성’을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번 회의 직전에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0.5% 포인트 줄어들 수 있다는 잿빛 관측을 내놨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무역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국가는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이기 때문에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보호무역주의를 직접 겨냥하지 않았지만 자유무역 진영에 가깝게 선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선언문에는 ‘무엇보다도, 무역과 지정학적인 긴장이 심화했다(have intensified)’는 표현이 새롭게 들어갔다. 지난해 G20 정상선언문에 채택된 ‘무역 이슈 및 지정학적 우려 등 일부 위험 요인이 부분적으로 현실화했음을 인식한다’는 문구보다 수위가 높아졌다.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갈등 수준이 악화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한국은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와 함께 해당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가장 강하게 주문했다.
문구 하나를 놓고도 격렬하게 다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번 회의가 오는 28~29일로 예정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린 마지막 재무장관회의였기 때문이다. 회의 과정과 내용을 잘 아는 관계자는 “20개 국가가 보호무역에 대한 우려를 공동선언문에 넣느냐 마느냐를 두고 치열하게 대립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밀어붙이는 미국의 강경한 반대 때문에 10년 만에 ‘보호무역주의 반대(fight protectionism)’라는 문구가 합의사항에서 빠졌었다.
세종=정현수 전성필 기자, 이경원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