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를 입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어둠을 좇아 식도를 따라 뱃속으로 내려가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지렁이를 씹어버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낚싯바늘에 꿰인 지렁이처럼 마구 몸을 꿈틀대진 않을까.
황당무계한 질문들인데 저자가 제시하는 ‘정답’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입안에 들어간 지렁이는 목구멍을 향하지 않는다. 치아 사이 틈새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앞니로, 혹은 어금니로 지렁이를 잘근잘근 씹는다 할지라도 지렁이는 격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운명을 받아들이듯 입안에서 널브러지고 만다. 저자는 지렁이가 품은 맛의 세계까지 들려준다.
“지렁이는 끈적끈적한 점액과 흙의 맛이 난다” “지렁이는 궁극의 로컬푸드다” “지렁이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몸통이고 점액의 맛은 몸통의 맛과 다른데 신기할 정도로 그 맛이 다양하다” “계절마다 지렁이의 맛은 다양하지만 기대만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자, 이쯤 되면 누구나 궁금할 것이다. 저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지렁이를 먹고 다닌 것일까. 제목부터 희한한 이 책 ‘그럼, 동물이 되어보자’는 어떤 작품일까.
“동물이 되고 싶었다”
국민일보 2017년 2월 3일자 신문에는 ‘염소가 된 인간’(책세상)이라는 책을 소개한 서평이 실렸었다. 책을 펴낸 주인공은 영국의 디자이너인 토머스 트웨이츠. 그는 인간으로서 걸머진 세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싶어서 염소가 되기로 결심했다. 트웨이츠는 알프스 산맥 염소농장에서 가짜 염소 다리를 팔과 다리에 끼우고 염소 무리에 섞여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괴짜였다. 그는 이 프로젝트로 2016년 기발한 연구 성과를 내놓는 학자에게 수여하는 ‘이그노벨상’ 시상식에서 생물학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런데 당시 외신 기사를 보면 트웨이츠 외에도 또 다른 학자가 공동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상자는 이 책의 저자이자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원인 찰스 포스터(57). ‘염소 인간’과 경합을 펼친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괴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을지 궁금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동물처럼 살아본 사람이다. 트웨이츠가 염소의 세계만 파고들었다면, 그는 오소리 수달 사슴 여우 칼새의 세계를 차례로 공략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는 게 아니다. 동물처럼 시각 청각 후각을 두루 활용해 세계를 인식하려고 애썼다. “인간중심주의”와 “의인화”라는 틀에서 벗어나 동물의 삶을 체감하려고 했다.
그는 “별난 괴짜처럼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의 프로젝트는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저자는 영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실험에 나섰다(지도 참조). 하나의 동물을 타깃으로 정하면 약 6주 동안 이 동물처럼 살았다. 수달이 돼보기로 했을 땐 이슥한 밤마다 강에서 헤엄을 치며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사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사냥개한테 쫓기기도 했다. 칼새의 삶을 가늠하고자 아프리카까지 칼새의 이동 경로를 따라간 적도 있었다.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오소리를 다룬 첫 번째 챕터다. 저자가 지렁이를 먹은 것도 오소리를 따라 하기 위해서였다(오소리의 먹이 중 85%가 지렁이다). 당시 그는 오소리가 그렇듯 언덕에 굴을 파고 그 안에서 살았다. 낮에는 오소리처럼 무념무상의 상태로 지냈다. 자고, 깨고, 기지개를 켜고, 똥을 싸고, 지렁이를 먹고, 자고, 깨고…. 비슷비슷한 일상이 간단없이 이어졌다. “오소리의 풍경은 후각으로 구성”되니 킁킁대면서 야생을 돌아다니곤 했다. 이렇게 살면서 그는 “냄새로 이루어진 풍경”이 어떤 것인지 희미하게 자각했다고 한다.
오소리의 삶을 알아가는 스토리 곳곳에는 제법 철학적인 분위기를 띠는 내용도 드문드문 등장하는데, 이런 대목은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오소리 서식지에서는 죽은 오소리의 두개골이 자주 발견됐다. 저자는 오소리 두개골과 관련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이렇게 말한다. “두개골이 발견되는 건 오소리들이 땅 밑 가족들 사이에서 죽어 그곳에 그대로 묻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오소리의 사체는 굴에 굽이를 하나 더한다. 할머니의 시신이 다음 몇 세대가 살아갈 지형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죽은 이들을 외곽 순환 도로 너머에 묻는다. 우리의 삶에 끼어들 수 없도록.”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다른가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오는 수준의 작품일 거로 생각해선 안 된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지점을 면밀하게 살핀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과학 심리학 문학 자연사를 아우르면서 군데군데 유머러스한 문장을 숨겨 놓은 저자의 필력도 인상적이다. 자연보다 오히려 단조롭고 무색무취한 현대문명의 실체를 짚은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여우 체험’에 나선 챕터가 대표적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여우처럼 살려고 했을 때 저자는 자연이 아닌 도시를 배회하며 음식쓰레기를 뒤지곤 했다. 영국의 여우가 그렇게 살고 있어서였다. 그가 쓰레기 봉지를 통해 확인한 건 현대인의 획일성이었다. 도시인들은 구입한 음식의 3분의 1을 버리고 있었으며, “모두가 거의 동일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도로에서 주택가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명멸하는 빛을 보니 73가구 가운데 무려 64가구가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었다. 저자는 “여우는 다른 여우와 같은 것을 보는 법이 없다”며 “우리에게도 코가 있고, 주어진 자리가 있다. 하지만 워낙 둔하고 무관심해서 우리가 보는 세상은 밋밋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동물이 돼보는 프로젝트를 통해 “아주 서서히 동물의 말 몇 마디를 알아듣게 되었고, 내가 하는 말도 동물에게 들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썼다. 믿을 수 없는 주장이지만 거의 대다수 사람이 저자와 같은 도전에 나선 적 없으니 반박하긴 힘들 듯하다. 책의 첫머리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만일 사자가 말을 한다 해도 사자의 삶의 양식은 인간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는 틀렸다. 나는 그가 틀렸다는 것을 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