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문이 있어도
당신은
문을 보지 못한다
내가 당신의 방패가 되어주었다면
내가 당신을 안아줄 수 있었다면
문밖에서 함부로 문을 닫지 않았을 텐데
문안에서 그리워하는 사람은
안팎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사람
그리하여 한번 늦은 사람은
영원히 늦은 사람
눈앞에 문이 있어도
당신은
문을 보지 못한다
당신은 한참이나 늦어버린 사람
이미 늦은 사람
배영옥의 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문학동네) 중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난 시인은 1999년 등단했다. 시집으로 ‘뭇별이 총총’과 산문집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가 있다. 시인은 생보다는 죽음에 더 번번이 마음을 빼앗겼다. 시 속 죽음의 풍경은 정지가 아니라 소멸하는 것들이 생동하는 국면으로 드러난다. 지난해 6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 시집은 유고 시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