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설치 부주의·관리 부실이 자초한 ‘인재’

입력 2019-06-11 19:21

잇따랐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의 원인은 양적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부실한 운영·관리’로 드러났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힘입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지만,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해 발생한 ‘인재’인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안전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는 11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4가지(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 시스템 미흡,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보호 체계 미흡)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ESS는 태양광·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나 값싼 심야전기를 저장했다가 꺼내 쓰는 장치다. 기상 여건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한다. 이런 장점 때문에 2013년 30개에 불과하던 ESS 사업장은 지난해 947개로 급증했다.

하지만 2017년 8월 이후 전국에서 연이어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발생한 화재만 22건이다. 대부분 화재는 ESS 설비를 전소시킬 정도로 컸다. 이에 정부는 올해 들어 약 5개월에 걸쳐 원인조사를 해왔다.

원인조사위가 내린 결론은 운영·관리 체계 미흡이다. 조사위는 “산지 및 해안가에 설치된 ESS가 결로나 먼지 등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 운영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배터리 보관 불량, 오결선 등 ESS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부품마다 제작업체가 다르다 보니 ESS가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설계·보호되지 못했던 점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조사위는 배터리 자체 결함에 대해서는 화재를 일으키는 ‘치명적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조사위는 “특정 회사의 배터리 일부 셀에서 극판 접힘, 절단 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의 제조결함을 확인했다. 다만 비슷한 셀을 제작해 충·방전 반복시험을 180회 이상 했으나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화재 재발을 막고 ESS 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조, 설치, 운영을 포괄하는 안전관리 방안을 만들었다. 오는 8월부터 배터리 셀은 안전인증으로 결함 발생을 막는다. 배터리 시스템은 안전확인 품목으로 지정해 관리한다. 옥외 ESS의 경우 별도 전용 건물 안에 설비를 설치하도록 규정하는 등 장소별 안전기준도 마련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기점검 주기도 4년에서 1~2년으로 단축하고, ESS를 특정소방대상물로 지정해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