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명 아역 기획사 대표 배역 미끼 거액 뜯어내”

입력 2019-06-10 18:56 수정 2019-06-10 21:07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명 아역 기획사 대표 A씨가 아역배우 부모 수십명을 상대로 차용과 전속계약 등 형식으로 금품을 가로챘다는 진정이 경찰과 고용 당국에 접수됐다. A씨는 부모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면 아이의 연예활동을 볼모로 삼아 부모를 협박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국출연자노동조합은 지난해 7월부터 A씨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 제보를 접수하고 자체 조사에 나섰다. 출연자노조는 피해자가 100여명, 피해액이 최소 수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출연자노조는 10일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지난달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과 서울 강서경찰서에 전수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냈다”고 밝혔다.

출연자노조에 따르면 A씨는 아역 부모에게 배역을 소개해주고는 촬영 직전 “전속계약을 하려면 3000만원이 필요하다” “배역을 따려면 PPL(간접광고)이 들어가야 하는데 300만원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돈을 받았다. 있지도 않은 배역이나 프로그램의 판권을 샀다고 거짓말해 가전속계약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제작사 접대비, 의상비 명목으로 부모에게서 수백만원씩 빌리고 갚지 않았다는 제보도 출연자노조에 접수됐다.

출연자노조 관계자는 “부모가 돈을 돌려달라고 하거나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A씨는 자녀를 볼모로 삼았다”며 “‘전속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진행하겠다. 3년간 타 활동 금지’라고 협박해 부모들이 참고 넘어가도록 종용했다”고 말했다.

일부 아역배우는 A씨와 부모의 갈등으로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아역배우 B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방송 출연을 못하게 된 뒤 극심한 스트레스로 약을 복용해야 잠에 들었다”며 “수년간 연예계 활동을 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지만 지금은 학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씨가 고소를 남발하니 엄마들이 엄두를 못 낸다”며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연기를 하겠다며 직접 기획사에 프로필을 보낼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A씨가 법망의 사각지대를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소속 연예인의 활동비용은 기획사가 부담하는 게 업계의 관례다. 그렇다고 전속계약금을 많이 받거나 개인차용 형식으로 돈을 받을 경우 법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 이 때문에 피해 부모들은 개인 단위로 전속계약 무효 소송을 진행키로 했다. A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아역배우 기획사를 운영했다.

A씨는 경쟁 기획사의 아역배우에 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수사받는 중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아역배우 C양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A씨를 지난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C양 어머니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부터 경쟁 기획사 대표에게 C양을 내보내라고 공격하고, 거짓 정보를 퍼트려 행사 참여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C양은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로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C양의 기획사 대표는 “A씨가 파트너사에 우리 회사가 부패했다는 허위 민원을 넣는 등 업무 방해가 심했다”며 “이번 주 A씨를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씨는 “개인적으로 돈을 빌리는 것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C양 어머니를 SNS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혐의로 맞고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거짓 캐스팅에 대해서는 “작품이 진행되다 무산됐을 뿐이고, 1회차 촬영분이 필요해 오디션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