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요’ ‘부릉’ 같은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라이더’들은 배달을 할 때만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할 수 있을까. 한국에선 불가능하지만 영국에선 가능하다. 라이더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시작해 마칠 때까지만 가입할 수 있는 ‘근로시간 연동’ 보험상품이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플랫폼 시장이 커지면서 그때그때 계약을 맺으며 일하는 ‘긱 이코노미’가 활성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도 필요할 때만 가입할 수 있는 단기보험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1년 이상 가입해야 하는 기존 보험상품들이 긱 근로자들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탓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10일 국내 플랫폼 경제 종사자가 47만~54만명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디지털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긱 이코노미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문혜정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도 긱 경제가 확대되면서 긱 근로자 맞춤형 보험상품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보험회사는 새로운 기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단기보험 상품에 대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야 단기보험 상품을 내고자 하는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진 상황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긱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보험상품 판매가 활발하다. 근로시간이나 업무단위 등에 맞춰 가입단위를 쪼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영국의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인 ‘제고(ZEGO)’는 음식배달 플랫폼인 ‘우버이츠’ 등과 제휴해 라이더들에게 시간 단위의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라이더가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하고 일을 시작하면 자동으로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된다. 미국의 온디맨드(on-demand, 수요에 따라 공급이 결정) 전문 보험업체인 ‘슬라이스(Slice)’는 숙박공유 서비스에 대한 보험상품을 제공한다. 숙박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등을 통해 집을 제공하는 호스트가 절도, 도구 과사용, 재산 손실 등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국내 보험업계에는 ‘긱 이코노미’라는 개념이 아직 생소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있어야 상품을 만드는데 일을 한 번씩만 하려는 사람들이 보험을 가입하려고 할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오토바이 보험은 의무보험이기 때문에 배달 중 사고를 내도 상대방에 대한 보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영업배상책임보험을 1년 단위로 가입하고 중간에 해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국내에서도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대응은 이뤄지고 있다. 긱 근로자가 가입하는 단기보험은 아니지만 보험사가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업체와 제휴해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일례로 전동킥보드를 대여하는 업체와 제휴해 배상책임보험을 제공하고, 기기 결함으로 사고가 났을 때 킥보드 이용자에게 보상해주는 식이다. KB손해보험 관계자는 “이런 종류의 보험상품은 이제 막 활성화되려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