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 FTA 사실상 타결…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 조기 차단

입력 2019-06-11 04:05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리암 폭스 영국 국제통상부 장관이 1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원칙적 타결 선언식’을 가진 뒤 공동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후폭풍’을 막아줄 차단막이 만들어졌다. 한국과 유럽연합(EU)이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우산’ 밖으로 영국이 나왔을 때를 대비한 한·영 FTA가 사실상 타결됐다. 모든 공산품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하는 등 현재 한·EU FTA의 통상조건, 교역수준이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과 영국의 통상환경이 연속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유럽에서 생산한 차량을 영국에 수출해도 3년간 무관세 혜택을 주기로 했다. 원산지를 ‘EU산’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0일 한·영 FTA 협상의 ‘원칙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2016년 6월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자 같은 해 12월부터 비공식 협의를 해왔다. 영국이 EU와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탈퇴하는 상황(노딜 브렉시트)이 가시화되자 양국 통상장관은 FTA 추진에 합의했다. 영국은 한국의 17위 교역국이다. EU 내에서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과 교역 규모가 크다.

한·영 FTA의 양허 수준은 발효 8년 차에 접어든 한·EU FTA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모든 공산품의 관세 철폐를 유지하기로 했다. 대(對) 영국 주요 수출품인 완성차, 자동차 부품 등은 지금처럼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이 영국에 수출하는 전체 상품 가운데 일부 농산물을 제외한 99.6%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한·영 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한국 수출품에 평균 4.73%의 관세가 부과될 것으로 추산한다.

농축산업 분야에선 여건이 더 좋아졌다. 농업 긴급수입제한조치는 한·EU FTA보다 낮은 수준에서 발동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낮췄다. FTA로 수입이 지나치게 늘어 국내 농축산업이 타격을 받으면 한층 쉽게 수입제한조치를 내릴 수 있다. 농업 긴급수입제한조치는 9개 품목(쇠고기, 돼지고기, 사과, 설탕, 인삼, 맥아·맥주맥, 발효주정, 변성전분, 감자전분)에 적용된다. 수요에 비해 생산이 부족한 맥아와 보조 사료에 한해서는 최근 3년간 통계를 고려해 관세율할당(TRQ·특정 수입품에 대해 일정량까지 저율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을 제공키로 했다.


원산지 표기와 관련해서는 3년간 EU산 재료를 사용해 생산한 제품도 역내산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일종의 유예기간을 둔 셈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영국이 아닌 다른 EU 국가에서 완성차를 생산해 영국에 수출해도 3년 동안 ‘영국산’으로 인정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식이다.

EU를 경유해 영국으로 상품을 운송하는 경우에도 향후 3년간 ‘직접 운송’으로 간주해 FTA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당분간 한국 기업이 영국 외 EU 국가에 있는 물류기지를 활용해 수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선 스카치위스키 등 영국 측 주류 2개 품목과 한국 측 농산물·주류 64개 품목에 지리적 표시로 인정하고 보호를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두 나라는 조속한 시일 안에 법률 검토, 정부 내 절차를 마치고 정식으로 협정에 서명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오는 10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를 감안해 국회 비준 등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번 원칙적 타결은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을 조기에 차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