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연극 문화의 산실이 됐던 설치극장 ‘정미소’ 폐관을 앞두고 추억을 되새기는 굿바이 무대가 열린다. 정미소 설립자인 배우 윤석화(63·사진)의 대표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다.
정미소는 2002년 윤석화와 건축가 장운규씨가 대학로 폐건물을 사들여 만든 192석 규모의 극장이다. 쌀을 찧는 정미소처럼 예술의 향기를 피워내자는 뜻을 담았다.
상업화 물결 속에서도 실험적 작품들을 올리며 연극 문화가 꽃피우는 데 이바지해왔다. ‘19 그리고 80’, ‘서안화차’, ‘사춘기’ 등 양질의 극들이 관객을 맞았다. 원로 박정자를 비롯해 이종혁 배두나 박해수 전미도 등 굵직한 연기파 배우들이 정미소 무대에서 관객들과 호흡했다.
하지만 경영난에 죽 시달렸고 건물주의 매각 결정으로 인해 결국 17년 역사를 끝맺음하게 됐다. 윤석화는 10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하나같이 잊을 수 없는 작품들 109편이 그간 정미소 무대에 올랐다”며 “최선을 다했다. 아쉬움도 있지만 부족함 덕분에 또 새날을 꿈꿀 수 있는 것 같다. 기쁘게 떠나보내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정미소 개관작 무대에 섰던 윤석화는 관객들과 유달리 많은 교감을 나눴던 대표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별 인사로 택했다. 1992년 임영웅 연출가의 지휘 아래 산울림 소극장에서 세계 초연된 1인극이다. 45살 비혼모가 12살 딸에게 삶의 교훈을 노래로 전하는 모습을 담았다. 초연 당시 매진 사례를 일으키며 10개월간 연속 공연을 이어간 기념비적 작품이다.
특히 내년 영국 런던 공연을 앞둔 윤석화는 이번 무대를 오픈 리허설 형식으로 선보인다. 김태훈 연출가와 최재광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윤석화는 “제작 여건상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겸손하게 시작했다”며 “그런데 준비를 하다 보니 거의 완벽한 공연에 가까워진 것 같다. 박정자 선생님께서도 무대를 보고 놀라시더라. 제작진 모두의 십시일반으로 정말 그럴싸한 무대가 됐다”고 했다.
1975년 데뷔해 시대를 풍미한 44년차 베테랑 배우이지만 남다른 의미의 공연인 만큼 긴장감이 대단하다. 윤석화에게 정미소와 연극은 “좋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다. 그는 “녹록지 않은 삶을 산 한 엄마의 성찰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 가운데 맑고 새로운 소망 하나씩을 갖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공연은 11일부터 22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