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에 잊지 못할 또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전·후반 90분, 연장전 30분, 승부차기에 이르기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안타까움에 탄식을 내뱉었다가도 금세 환호를 지르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숨 막히는 120분이 흘렀다. 숨가쁜 120분 끝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 ‘정정용호’는 목표로 했던 ‘어게인(AGAIN) 1983’을 넘어 새로운 신화 창조에 도전한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남자 축구대표팀은 9일(한국시간)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U-20 월드컵 8강 세네갈전에서 3대3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3대 2로 승리했다. 이로써 대표팀은 박종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U-20 전신) 이후 36년 만에 두 번째 4강 신화를 완성했다. 대표팀은 미국을 2대 1로 따돌린 에콰도르와 12일 오전 3시30분 결승 진출을 놓고 다툰다.
이날 대표팀은 앞선 경기들과 마찬가지로 전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8강 진출 팀 중에서도 체격, 속도가 월등한 세네갈에 끌려갔다. 결국 전반 37분 세네갈의 코너킥 상황에서 카뱅 디아뉴가 왼발로 힘껏 차 골 네트를 갈랐다.
그간 무서운 뒷심을 발휘해온 정정용호는 후반 들어 반격 기회를 잡았다. 후반 13분 정호진(고려대)의 슈팅 당시 이지솔(대전)이 상대 수비에 떠밀려 넘어진 것이 비디오 판독(VAR)에 잡혀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키커로 나선 이강인(발렌시아)은 상대 골문 왼쪽으로 차 넣어 골로 연결시켰다. 한국이 VAR로 기세를 올렸지만 후반 31분에는 VAR로 다시 리드를 허용했다. 이재익(강원)이 수비 과정에서 손으로 공을 건드려 페널티킥이 선언됐기 때문이다. 이광연(강원)이 이브라히마 니안의 페널티킥을 막았다. 이광연과 한국 벤치의 환호성이 나왔지만 VAR 결과 이광연의 두 발이 골라인에서 떨어진 것이 드러났다. 재차 페널티킥이 주어져 실점했다.
후반 41분에는 세네갈이 다시 골을 성공시키며 두 골차로 달아나는 듯했으나 VAR로 핸드볼이 선언돼 골로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후반 추가시간을 1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이강인의 코너킥을 받은 이지솔이 헤딩 동점골을 성공시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은 앞선 전·후반 90분과 상반된 흐름을 보였다. 6분 만에 조영욱(서울)이 이강인의 절묘한 스루패스를 받아 골로 연결시키며 3-2로 앞서나갔다. 이후 수비를 강화한 대표팀은 실점 없이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마지막 추가시간 1분을 버티지 못했다. 아마두 시스가 페널티지역에서 흘러나온 공을 오른발로 차 동점을 만들었다.
승부차기에서도 대표팀은 1, 2번 키커 김정민(리퍼링)과 조영욱이 실축하며 패색이 짙었다. 관중석의 한숨소리가 그라운드까지 흘러들었다. 하지만 엄원상(광주), 최준(연세대)의 잇따른 성공과 상대 실축으로 2-2 상황을 만들었다. 이후 마지막 키커로 나선 오세훈의 슈팅이 골키퍼에 막혔으나 VAR 결과 골키퍼가 골라인을 벗어난 게 확인돼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오세훈은 두 번째 슈팅을 성공시켰고, 세네갈 마지막 키커인 디아뉴가 허공으로 공을 날리면서 이날 혈투가 끝났다. 정 감독은 “오늘은 기쁨을 만끽히고 내일부터 잘 준비하겠다. 끝까지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