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잇따라 히든카드 꺼내며 고래싸움… 한국 기업 ‘새우 신세’

입력 2019-06-09 19:09 수정 2019-06-09 21:57
이강(오른쪽)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지난 8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도중 스티븐 므누신(왼쪽) 미 재무장관을 찾아와 웃으며 말을 걸고 있다. 므누신 장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고 있다. 두 사람은 이튿날인 9일 따로 만나 회담했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AP뉴시스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무역 불균형과 불공정 시장관행을 명분으로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여온 미국은 천안문 사태와 대만 문제 등 민감한 부분까지 건드리며 중국을 도발하고 있다. 중국 역시 대미(對美) 보복 수단으로 외국기업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에 이어 희토류 금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중 갈등이 세몰이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미국 및 중국의 기업들과 기술 협력을 하는 글로벌 기업들까지 기로에 몰렸다. 한국 기업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중의 첨예한 갈등 속에 한국의 외교안보 및 경제 사안들이 앞으로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한국의 기획재정부 격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까지 나섰다. 국가발전개혁위는 안보 위협의 예방과 해소를 위해 ‘국가 기술안전관리 리스트’ 제도를 신설한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8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특정 국가가 중국의 기술을 악용해 중국의 발전을 방해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제도가 미국의 공세에 맞선 반격 수단임을 암시한 셈이다.

신화통신은 구체적인 내용이 조만간 공개될 것이라고만 밝혔을 뿐 리스트 등재 대상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새 제도가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와 관련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발전개혁위는 최근 희토류산업 관련 전문가 좌담회와 기업 공청회를 잇달아 열었다. 후시진 환구시보 편집장은 트위터에 “제도가 시행되면 대미 기술 수출 일부가 통제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국 상무부도 화웨이 제재에 동참한 기업을 겨냥한 ‘불신 외국기업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대중 압박은 이미 도를 한참 넘었다. 미국은 중국이 30년간 금기시해온 천안문 사태를 직접 거론하며 인권 공세를 벌였다. 이어 미 국방부는 최근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처음으로 ‘국가(country)’로 지칭했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이 40년 동안 암묵적으로 지켜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뒤흔든 것이다. 국방부는 보고서에서 중국이 주변에 억압적인 질서를 수립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미·중 갈등은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분수령을 맞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G20 회의 기간 따로 만나 양자회담을 할 예정이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 7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에서 “미·중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며 “나는 물론 내 친구 트럼프 대통령도 그런 일을 원치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SCMP에 따르면 시 주석이 공개 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친구’로 지칭한 것은 처음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8일 일본 후쿠오카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합의를 이뤄낸다면 훌륭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관세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은 9일 이강 중국 인민은행장과 회담한 뒤 “건설적이고 솔직한 대화를 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견이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한편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미국의 반대로 ‘반(反)보호주의’ 내용이 공동성명에 포함되지 못한 채 9일 폐막했다. G20 정상회의 성명에서도 반보호주의 관련 내용이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