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허위매물 3839건 통보받고도 조사 한 번 안한 공정위

입력 2019-06-10 04:04

부산에 사는 A씨는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부동산 매물을 보고 공인중개업소를 찾아갔다. 공인중개업소는 해당 매물이 거래완료 됐다면서 다른 고가의 매물을 추천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인터넷에 올라온 매물은 실제 매물이 아닌 경매물건이었다. 경매물건의 입찰 가능가격을 매매가로 허위 표기해 A씨를 유인한 것이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허위매물 신고를 받고, 해당 매물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삭제했다. 이어 이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업소를 허위·과장광고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업소는 KISO로부터 경고만 받았다. 이 업소는 다시 허위매물을 온라인에 올렸다.

온라인을 매개체로 하는 부동산 거래시장이 덩치를 키우면서 허위매물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허위매물신고는 지난해 10만건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제재권을 갖고 있는 공정위는 뒷짐만 지고 있다. 단 한 번도 조사를 하거나 제재를 하지 않으면서 공정위가 직무유기를 한다는 비판이 높다.

9일 공정위가 자유한국당 김선동 위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3~2018년)간 KISO에서 공정위로 통보한 부동산 허위매물은 3839건이었다. 특히 KISO는 월 3회 이상 허위매물로 적발된 300곳 이상의 공인중개업소 명단까지 제공했다. 공정위는 이를 통보받고도 지금까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KISO는 공정위가 주무부처인 표시광고법의 자율심의기구다. 매월 공정위에 부동산 허위매물 검증 결과를 통보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를 토대로 공인중개업소에 시정조치 등의 제재를 내렸다면, 부동산 허위매물이 범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KISO에 신고가 접수되는 허위매물신고 건수는 2013년 4989건에서 지난해 11만6012건으로 폭증했다. 인력이 부족한 KISO는 전체 신고 건수의 10%가량만 현장검증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검증한 1만8901건 가운데 3839건이 허위매물로 확인됐다. 신고된 5건 중 1건이 실제 허위매물인 셈이다.

공정위는 부동산 허위매물을 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허위매물 광고가 실제 거래로 이어지는 사례가 드물고, 그동안 처벌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경쟁 당국이 부동산 허위매물을 철저하게 제재한다. 일본은 각 지역에 경쟁당국과 자율규제기구가 부동산공정거래협의회를 설치해 허위매물 근절에 나서고 있다.

허위매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선 공인중개사를 제재하는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다만 법이 통과된다해도 허위매물을 방치하는 대형 부동산광고플랫폼을 처벌할 수 없다는 한계점을 안고 있다. 세종대 부동산학과 임재만 교수는 “공정위가 반복·고의적으로 허위매물을 올리는 몇몇 중개업소를 시정조치만 했어도 지금처럼 허위매물 홍수 사태는 없을 것”이라며 “인력이 부족하다면 일본 사례처럼 민관 합동으로 규제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한마디로 공정위의 직무유기”라며 “앞으로 더 많은 피해가 예상되는만큼 지금이라도 적극적인 제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