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메시, 2019년 이강인… 연령 뛰어넘은 ‘황금의 왼발’

입력 2019-06-09 19:10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의 에이스 이강인(왼쪽)이 9일(한국시간) 열린 U-20 월드컵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세네갈 선수와 공을 다투고 있다. 이강인은 이날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다. AP뉴시스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는 리오넬 메시(당시 18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친 무대였다. 6골을 터뜨린 메시는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고 아르헨티나는 정상에 올랐다. 14년 후 폴란드에서 진행 중인 후신 대회에서 메시와 같은 나이의 기재가 나타났다. 20세 이하(U-20)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 이강인이 그 주인공이다.

이강인은 9일(한국시간) 열린 2019 FIFA U-20 월드컵 세네갈과의 8강전에 선발 출전해 36년 만에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뤄냈다. 이강인은 이날 1골 2도움을 올리며 팀의 모든 득점에 관여했다. 높이와 주력에서 앞선 세네갈을 상대로 이강인의 독창적인 기술력은 빛을 발했다.

이강인의 공격 가운데 단연 일품은 날카로운 킥이었다. 세트피스와 같이 정지된 상황에서 그의 킥은 정확하게 목적지를 향했다. 후반 17분 이강인은 이지솔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경기 종료 직전인 추가 시간 8분에는 이지솔의 머리를 겨냥한 코너킥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도왔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이강인의 킥 능력은 같은 연령대에서 최고 수준이다. 성인 대표팀에서도 그만한 키커는 흔치 않을 것”이라고 호평했다.

공간을 가르는 절묘한 전진 패스로 동료들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후반전 상대 수비 뒤를 파고드는 최준에게 찔러준 이강인의 킬패스는 넓은 시야와 센스로 가능했다. 체력 부담이 컸을 연장전에서도 패스는 매서웠다. 연장 전반 6분 이강인은 상대 수비수 세 명을 무력하게 만드는 스루패스를 조영욱에 연결하며 역전골을 만들어냈다. 경기를 생중계한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이강인의 패스를 두고 “지네딘 지단을 떠올리게 한다”며 감탄했다.

킥과 패스 외에도 탈압박과 드리블, 볼 터치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강인은 월등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기술을 강조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일찍부터 축구를 배운 덕이다. 이번 대회에 나선 경쟁 선수들보다 두 살이 어리다는 점을 감안하면 존재감은 더 커진다. U-20 동료들은 막내 이강인의 실력을 존중해 “강인이 형”이라고 장난삼아 부른다.

과거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했을 때부터 이강인을 봐온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그를 메시에 비유했다. 개인기뿐 아니라 전술 이해도와 체력, 정신력 등 축구선수에 요구되는 재능을 두루 타고났다는 이유에서다. 김 해설위원은 “지금의 이강인은 어릴 적 메시를 보는 것 같다”며 “한국 축구에서는 볼 수 없던 유형의 선수”라고 극찬했다.

이강인의 맹활약에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스페인 언론 아스는 “이강인은 이날 의심의 여지 없이 한국 최고의 스타였다. 그의 기술과 능력은 두드러졌다”고 보도했다. 소속팀 발렌시아 CF도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이강인이 U-20 월드컵에서 1골 2도움으로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고 전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이강인은 팀을 우선했다. 경기 후 이강인은 방송 인터뷰를 통해 “팀을 믿었기에 승리도 믿었다”며 “제가 잘할 수 있었던 것은 형들이 도와주고 응원해준 덕분”이라고 동료들에 공을 돌렸다. 결승까지 한 걸음만을 남겨둔 만큼 우승에 대한 의지와 야심도 숨기지 않았다. 이강인은 “4강전을 잘 준비해 결승까지 가고 싶다. 역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