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자료 두 차례 소실… 기념 행사보다 ‘뿌리 찾기’가 더 중요

입력 2019-06-10 18:19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듬해인 1920년 임정의 신년축하회(위), 1919년 임정이 독립운동 사료 정리를 위해 설치한 임시사료편찬위원회(왼쪽 아래). 편찬위원들 중 뒷줄 가운데가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오른쪽 아래는 1935년 임정 요인 기념사진. 앞줄 가운데가 백범 김구, 오른쪽 두 번째가 석오 이동녕 선생이다. 국가보훈처·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지난 4월 한 중학생의 가족이 청와대에 안중근 의사 공판 속기록 진품을 기증했다. 청와대는 문화재청 감정 결과 해당 자료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가족은 일본 온라인 경매시장에서 740만원을 주고 해당 자료를 직접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했다.

훈훈한 스토리지만, 정부 차원에서 보유하지 못한 사료가 민간과 해외에 흩어져 있다는 현실도 함께 보여준 장면이다.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았지만 관련 사료 역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임정과 임시의정원(임시정부에서 국회 기능을 한 기구)의 수많은 활동 자료는 두 차례에 걸쳐 소실돼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임정 수립일을 두고 혼선이 빚어졌던 것도 임정 활동을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임정 10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보훈자 처우를 강화하고 서훈 범위도 늘렸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도 늘리고 있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임정 자체에 대한 연구를 늘리고, 사료 모집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누구나 임정의 존재는 알지만 세부 활동 내역은 잘 모른다. 임정의 구체적인 활약상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진정으로 임정 100주년을 기념하는 방법일 것이다.

20여년간 임정의 뿌리를 연구해 온 한시준 단국대 교수에 따르면 임정 자료는 두 차례에 걸쳐 사라졌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 이후 일제경찰이 임정 사무소를 급습했는데, 이때 1919년 임정 수립 이후 1932년까지의 문서 980건이 일제에 넘어갔다. 1932년 10월 상하이일본총영사관은 수탈한 자료 목록을 정리한 ‘조선민족운동연감’을 펴냈는데, 여기에는 임정 수립일이 1919년 4월 13일으로 명기돼 있었다. 우리 정부가 1990년부터 매년 4월 13일 임정 수립 기념식을 거행했던 것도 이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임정 수립일에 대한 추가 사료가 발견되면서 정부는 올해부터 수립일을 4월 11일로 수정했다.

1932년 상하이일본총영사관이 임정 사무소에서 탈취한 자료로 펴낸 ‘조선민족운동연감’(맨 위). 아래는 ‘안중근 사건 공판 속기록’과 관련 엽서. 그 밑은 김구 주석 사임서와 주석 선서, 1945년 4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서거 때 임정의 조전. 독립기념관·청와대 제공

1932~1945년 임정 문서는 6·25전쟁 이후 사라졌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임정 요인들은 13개의 가죽가방에 자료를 담아 귀국했고, 이 자료들은 조남직 임정 비서처 용도과장의 서울 혜화동 집에 보관됐다. 그러나 조남직 과장이 6·25 때 납북되면서 자료들도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임시의정원 문서는 1946년 창설된 비상국민회의 의장을 맡은 홍진 선생이 보관해오다 그의 후손이 1967년 국회도서관에 기증했다. 임시의정원은 1919년부터 1945년 8월 17일 임시의회까지 모두 39회 열렸다. 다만 국회도서관이 보유한 자료는 회의록 전체가 아니라 일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사라진 임정 문서들이 중국과 북한에 남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교수는 “1932년에 사라진 자료는 중국 상하이당안관(정부기록보관소)에, 6·25 때 분실된 문서는 북한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 북한의 협조를 구해 임정 자료를 회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45권의 임정 자료집과 6권의 별책을 냈다. 독립기념관도 서한과 공문서, 신문, 선언서 등으로 분야를 나눠 임정 자료 일부를 보관 중이다. 하지만 임정의 활동상을 면밀히 파악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국가기록원의 국내 민간 기록 구입 예산은 400만원밖에 안 된다. 해외 기록물 구입 예산도 2억원가량에 불과하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주로 일제가 만든 임정 관련 자료들을 보관 중이고, 민간이 갖고 있는 기록물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민간에 흩어져 있는, 일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원 문서들을 찾아내야 임정의 진면모가 파악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는 “다양한 기념 행사보다 뿌리를 찾는 노력이 먼저”라며 “연구자 홀로 자료를 찾는 것은 힘에 부친다. 사료 확보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