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6년 만의 4강 신화

입력 2019-06-10 04:05
폴란드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의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세네갈을 꺾고 4강전에 진출했다. 1983년 멕시코 대회 이후 36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4강에 올랐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에서 우월하다는 팀들을 차례로 돌파하며 거둔 쾌거였다. 선제골을 내준 뒤 후반전과 연장전에 연달아 세 골을 넣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결국 승리를 쟁취한 세네갈전이 말해주듯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다. 8강전까지 다섯 경기를 치르며 넣은 일곱 골 가운데 여섯 골이 후반 이후에 나왔다. 예선 ‘죽음의 조’에서 강팀들을 상대하기 위해 정정용 감독이 택한 선수비 후역습의 전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돼야 통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훌륭히 소화했다. “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정 감독의 말은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선수들이 흘렸을 땀의 양을 가늠케 했다. 지치지 않고, 또 안주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는 대표팀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세네갈전은 축구팬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다 졌다고 생각했는데 동점을 만들었고 이기는가 싶더니 막판 동점골을 내줬으며 승부차기의 순간순간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적이었다. 어려운 경제와 무능한 정치에 답답하기만 했던 이들에게 모처럼 활력소가 됐을 것이다. 최근 문화·스포츠 분야에서 비슷한 낭보가 잇따라 들려왔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 차트 석권에 이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으로 한류에 새 지평을 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미국 프로야구의 류현진과 유럽 프로축구의 손흥민도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며 멋진 경기를 했다. 이런 일을 국위선양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너무 낡았다. 세계에 한국을 알려서 잘한 게 아니라 이렇게 인정받도록 열심히 갈고닦은 그들의 노력이 값진 것이고, 세계의 벽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그들의 성취가 대단한 것이다. 준결승전에서 더 어려운 승부에 나서야 할 월드컵 무대의 젊은 선수들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의 무게에서 벗어나 축구를 충분히 즐기는 경기를 하기 바란다. 축구, 참 재미있는 스포츠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