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중에 샌드위치된 한국 IT… 정부가 나서야

입력 2019-06-10 04:03
미국과 중국 간 정보기술(IT) 기업 줄 세우기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중국이 삼성 등 주요 IT 기업을 불러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협조할 경우 비참한 결과(dire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개발개혁위원회·상무부·산업정보기술부 등 3개 부처가 지난 4~5일 회의를 열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미국 기술의 중국 판매 금지 조치에 협조할 경우 ‘엄청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소환 대상엔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델, 영국 반도체 기업인 암 대표자들도 포함됐다. 중국 관리들은 회의에서 “미래 보장 목적의 일반적인 다변화 차원을 넘어 중국 내에서 생산시설을 철수할 경우에도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할 경우 보복하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이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대한 수개월간의 물밑 압박에 이어 해리 해리스 주한 대사가 최근 한국 기업들에 화웨이 제재 동참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에 중국 정부가 ‘이에는 이’ 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한국이 가장 우려한 미·중 간 분쟁에 샌드위치가 되는 경우의 수가 현실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화웨이에 납품하는 업체뿐 아니라 다른 중소기업들의 대중 수출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정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업 간 의사 결정에 정부가 일일이 간섭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화웨이의 5G 장비 의존율이 한국은 10%밖에 안 된다”면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 일각에서 화웨이의 위기가 삼성의 어부지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는데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세계 양대 강국이 벌이는 전면적 기술전쟁의 파장을 기업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요 직무유기다. 양국 간 기술전쟁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이 갈수록 맞아들어가고 있다. 정부는 이미 사드 사태 때 효력이 다한 것이 판명된 ‘시간 끌기’나 ‘전략적 모호성’에 안주할 게 아니라 적극적 예방 외교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