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을 놓고 “대화부터 하자”는 미국과 “새로운 계산법부터 내보이라”는 북한 간 대치가 3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양측 모두 양보 의사 없이 간극만 키우는 상황이라 대화 공백기가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나는 적절한 시점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기를 기대한다”면서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일랜드 섀넌 공항 VIP라운지에서 취재진과 만나 “(북한에서) 중대한 시험발사가 없었고 핵실험도 장기간 없었기 때문에 꽤 잘 진행돼온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 4일 미 일간지 워싱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과 다시 진지한 대화를 할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은 대북 제재 완화를 위해선 비핵화 이행이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은 “대화를 하자”면서도 대북 압박은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 국무부는 북한의 해상 불법 환적과 사이버 범죄 신고에 대해 최대 500만 달러(약 59억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지난달 9일엔 법무부가 북한의 대형 화물선 ‘와이즈어니스트호’에 대한 압류 조치를 단행해 북한이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지난달 두 차례 단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데 이어 이달 초엔 김 위원장이 자강도와 평안남도의 군수공장을 돌아봤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이후 6차례에 걸쳐 미국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지난 4일 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6·12 북·미 정상회담 1주년 담화문에서는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며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자신들의 요구에 화답하라고 촉구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6일 “현 국면에서 북한이 원하는 제재 해제와 체제 보장은 미국이 할 생각이 없고, 미국이 원하는 포괄적 비핵화 합의는 북한이 의사가 없어 보인다”며 “김 위원장이 연말까지 협상 시한을 정했기 때문에 한동안 양측의 기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미국과 중국 지도자가 만나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북·미 협상 재개의 첫 번째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이 이번에 무역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중국이 북한 압박 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의 ‘버티기 전략’이 더 장기화될 수 있고, 보다 강력한 추가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 협상에 참여한 북한 인사들에 대한 처형설과 관련해 “처형설이 나온 사람들 중 1명은 처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착각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처형당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얼마 전 밤 극장에 있었고, 그러니까 처형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나머지 4명은 모른다”고 했다. 당초 처형설이 나온 것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였으나 최근 북한의 극장 행사에 나온 인사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다. 그러나 미국이 별도로 파악한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승욱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