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 ‘밥누나’ 안판석표 현실 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은

입력 2019-06-07 04:03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JTBC)의 안판석 감독과 김은 작가가 새로 선보이는 드라마 ‘봄밤’(MBC)의 한 장면. 도서관 사서 이정인(한지민·사진 왼쪽)과 약사 유지호(정해인) 사이의 로맨스를 담백하게 풀어낸다. MBC 제공

화제의 안판석 표 드라마 ‘봄밤’(MBC)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전작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밥 누나’)의 반복이라는 견해와 유려한 감성 멜로라는 반응이다. 두 드라마의 분위기가 비슷하긴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봄밤에는 봄기운처럼 산뜻한 부분이 적지 않다.

봄밤은 특히 화제성 면에서 두드러진다. 화제성 분석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낸 자료에 따르면 22일 첫 전파를 탄 이후 단박에 화제성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전작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안판석 감독과 김은 작가가 함께 만든 작품인 데다 한지민 정해인 등 화려한 캐스팅도 한몫을 했다. MBC가 이번에 ‘9시 드라마’를 파격적으로 처음 편성하면서 첫 타자로 세운 작품이었다.

첫 방송 이후 일부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던 건 전작을 떠올리게 하는 외피 때문이었다. 밥 누나와 같은 ‘일상 멜로’를 1년 만에 들고 온 탓이 컸다. 전작이 평범한 연상 연하 커플의 연애를 그려내면서 사랑받았던 것처럼 봄밤도 도서관 사서 이정인(한지민)과 약사 유지호(정해인) 사이의 로맨스를 현실적이고 담백하게 풀어낸다.

출연진 중복도 기시감을 키웠다. 정해인을 비롯해 김창완 길해연 오만석 서정연 주민경 등이 역할만 달리해 등장한다. 극의 여백을 채우는 집과 길의 담담한 풍경, 긴 호흡의 시퀀스도 전작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하지만 포장지만 보고 똑같다고 하기엔 내용이 상당히 새롭다. 곱씹어볼수록 전작과는 다른 이채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한지민 정해인 등 배우들의 호연 덕도 있지만 안 감독의 연출력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안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기법과 연출 센스는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함으로 바꿔낸다. 긴 여백에 시청자들이 감정을 적극 투영하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가령 카메라는 정인과 지호가 농구 코트에서 우연히 만나 번갈아 눈길을 보내는 장면을 별 장치 없이 죽 내보낸다. 약국에서 지호가 사뭇 진지한 얘기를 할 때면 오래도록 공사 소음이 들려와 말을 끊는다. 현실의 멜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매끄럽기보단 덜컹거리고 빠르기보단 돌아갈 때가 많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느껴진다.

안 감독의 작품은 가볍게 볼 수 없는 면이 있다. 개인의 사랑이 언제나 사회 구조와 연관돼 표현되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윤진아(손예진)는 사랑을 통해 주체적인 자아로 성장하면서 속물적인 엄마와 직장 내 성차별 등의 문제에 성숙하게 대처한다. 이번에도 미혼부인 지호와 가부장적인 정인의 아버지 등 여러 인물들의 관계가 사회의 편견과 억압을 끄집어낼 것으로 보인다.

정인은 본인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이미’ 주체적인 인물이다. 따라서 향후 성장 서사보단 갈등의 극복을 통해 사랑을 이뤄내는 과정이 단순하게 그려질 가능성도 없진 않다. 안 감독은 “대본을 보면서 다음이 기다려졌고, 재밌겠단 생각을 했다”고 극을 소개한 바 있다. 이 말이 맞는다면, 봄밤은 무더운 여름에도 설렘을 줬던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