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 사회를 보수·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보수든 진보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애국을 생각한다면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훈의 정신을 말하면서 굳이 보수·진보를 언급한 까닭은 이 사회에 팽배한 이념적 분열과 갈등을 대통령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은 진영논리에 갇혀 국회를 닫아 걸은 채 지지층 결집에만 몰두해 있다. 여당이 제1야당을 향해, 제1야당이 청와대를 향해 국민을 편 가른다고 서로 비난하는 동안 국민은 실제 편이 갈려버렸다. 평범한 시민의 입에서 좌파독재니 우파꼴통이니 하는 말이 서슴없이 나오고, 온라인에선 뉴스마다 좌우 진영이 삿대질하는 댓글로 도배된다. 나라 안팎의 경제 환경은 국력을 결집해도 모자랄 판국인데 우리는 엄청난 갈등 비용을 치르며 체력을 낭비하고 있다. 국민 통합이 절실한 시점에 대통령이 그 메시지를 꺼냈다. 하지만 통합은 말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실천이 없으면 공허할 뿐이며 실천은 정권을 쥔 쪽에서 앞장서야 할 몫이다.
통합된 사회를 지향한다면 그동안 펼쳐온 국정에 분열을 조장하는 요소는 없었는지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지난 2년간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에서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앞서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폐청산과 개혁은 필요했지만 너무 거칠었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일자리, 노동, 부동산 등 중요한 정책마다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고 그것은 정치권의 진영 대립으로 이어졌다. 분출하는 갈등을 넘어보려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고 여야정 협의체를 시도했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사회원로 간담회에서 “정책 전반이 그냥 거대한 갈등으로 뭉쳐져 있다. 정치가 참 어렵다”고 토로했다. 통합의 정치는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다. 정책의 주파수를 수정하고 완급을 조절하며 인재 등용의 범위를 넓히는 등 반대와 비판을 수용하는 모습을 통해 차근차근 이뤄가야 한다. 통합 메시지를 꺼내는 추념사에서 보수진영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김원봉의 독립운동을 언급하는 식의 불필요한 갈등거리부터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되는 데 17년, 다시 3만 달러가 되는 데 12년이 걸렸다. 남들보다 배 이상 걸린 까닭은 이분법 사회의 소모적 갈등 비용과 무관치 않다. 문재인 정권이 솔선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사설] 보수·진보 넘어선 국민 통합, 정부여당부터 솔선하길
입력 2019-06-07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