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 반도체 때리기’ 가능성에 대비해야

입력 2019-06-07 04:0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일 반도체 사장단과 긴급회의를 한 데 이어 TV, 스마트폰, 통신장비 등 주요 사업부 핵심 경영진과 연쇄 회의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첨단 정보기술(IT)산업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정부가 벌이는 패권 전쟁의 불똥을 삼성이 맞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삼성 고위층은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화웨이를 집중 공격하듯이 삼성도 어느 순간 특정 국가로부터 견제당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국제경제·통상 전문가들의 걱정과 일맥상통한다. 미·중 무역전이 기술 패권을 둘러싼 전면전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미국이 삼성전자 같은 제3국 기업에도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라고 압력을 넣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5일 국내 IT 업체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사실상 화웨이 장비를 쓰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삼성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미국 편에 서면 중국 정부로부터 보복 조치를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 시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18%를 차지했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중국 IT 기업 때리기가 어느 순간 한국 반도체산업을 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기업을 어느 정도 ‘길들인’ 다음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해 황금알을 낳고 있는 한국 반도체산업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17년 보고서에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대상으로 철강, 자동차와 함께 반도체를 지적한 바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중국과 일본도 한국 메모리 반도체 독주체제를 타파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만큼 미-중-일 연합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의 사태는 개별 기업이나 산업이 각자도생으로 해결할 수준이 아니다. 전후 무역질서가 전면 재편되는 대전환기에 들어섰다는 게 분명해졌다. 정부는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성장동력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이를 막기 위한 경제 외교에 최우선으로 외교력을 쏟아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