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시설기준 강화… 병원은 오늘도 공사중

입력 2019-06-09 18:53
한 수도권 소재 종합병원에서 내부 공사를 하고 있다.

의료기관들이 법·제도 변화에 지쳐가고 있다. 시작은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였다. 그간 ‘환자편의’에 방점을 찍고 장비를 사들이거나 번듯한 건물과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려 노력했던 병원들은 ‘환자안전’을 고민해야했고, 끝나지 않는 공사를 시작했다. 정부는 메르스 발생 직후 병원 내 감염 확산을 막고 환자의 안전을 확보해야한다며 병문안 문화 개선 캠페인과 병동 출입차단 방호문(스크린도어) 설치를 규정했다. 당장 의료기관들은 공사에 들어갔다.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안내데스크를 만들고 면회 통제요원을 세웠다. 병동 출입구에는 스크린도어와 바코드 인식기가 설치됐다.

가장 큰 변화는 병실이다. 기준 병상이 4인실로 바뀜에 따라 벽을 허물고, 침대를 빼는 등 대대적인 공간 재배치가 이뤄졌다. 병상 간 거리도 1~1.5m 떨어뜨렸다. 병상과 병상 사이의 가림막도 다시 설치해야 했고, 병상 수에 맞춘 주차공간도 법에 의거해 확보해야 했다.

병원의 구조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공사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한 스프링쿨러 설치였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건 등 의료기관 화재가 여타 기관보다 더욱 위험하다는 점을 이유로 정부가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은 자비를 들여 천장을 뜯거나 간이 스프링클러를 속속 설치했다. 일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상가 등에 위치한 중소병원들도 강화된 기준에 따라 건물주와 협상에 나서거나 공사에 들어갔다. 기타 제연설비, 방염용품 구비로 분주함도 보였다.

이제 한 숨 돌리나 했던 의료기관들은 또 다시 천장을 뜯거나 건설업자를 찾아야했다.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CCTV 설치에, 공기 질 관리기준 강화로 인한 공조시설의 개보수나 공기정화시설 확보를 위해서다.

이에 한 지방병원장은 “환자 안전과 진료환경 개선을 위해 따라야겠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보장성 강화와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 가중, 각종 시설 개보수까지 이어지니 빚을 지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한숨 쉬었다.

또 다른 수도권 소재 중소병원장은 “의료기관의 유동인구가 얼만데 공기 질 관리를 의료기관 책임으로만 돌리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처벌규정까지 두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직무유기 아니냐”면서 “다들 넋 놓고 있다. 차라리 벌금을 물겠다는 이들도 있다. 이게 정부가 말하는 규제완화고 더불어 사는 사회냐”고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료계 단체들도 ‘탁상행정’, ‘행정 편의적 정책’이라며 날을 세웠다. 의사협회는 “기본적으로 정부는 국민이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단순히 의료기관 시설기준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지나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이나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었다. 다만, 의료기관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점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며 “충분하진 않겠지만 일부나마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재정당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