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없다” 하면 속수무책… 정신질환자 운전면허 관리 ‘허점’

입력 2019-06-06 04:03
4일 오전 7시 34분께 충남 공주시 우성면 당진-대전고속도로 당진 방향 65.5㎞ 부근에서 역주행 사고가 발생해 공주소방서 대원들과 경찰이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공주소방서 제공

조현병을 앓던 40대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역주행하다 교통사고를 내 세 살 아이와 예비신부가 숨지는 일이 발생한 후 중증 정신질환자 운전면허 관리 허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결격 심사 제도가 있지만 질환을 스스로 밝히지 않을 경우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도로교통법 제82조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정신질환자 또는 뇌전증 환자’는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면허시험을 응시할 때 응시자가 자신의 질병을 자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면허 취득 이후 운전자의 정신질환 유무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5일 “정신질환자 중 일부 신고를 하지 않는 운전면허소지자가 있더라도 건강보험을 통해 관련 치료를 받았다면 각 지자체에서 정보를 제공, 수시적성검사 대상자가 된다”며 “대상자는 수시적성판정위원회를 통해 면허 유지 여부를 판단 받는다”고 설명했다.

위원회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운전자가 ‘약을 복용하면 운전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하면 조건부로 면허 유지를 허용한다.

하지만 각 지자체에는 6개월 이상 입원 치료 중인 환자에 한해 질환 보유 사실을 도로교통공단에 통보한다. 장기입원 치료 기록이 없다면 운전을 하기 어려운 중증질환자도 아무런 제재 없이 운전면허를 갱신할 수 있는 구조다.

지난 3월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의료인 및 경찰이 정신질환 등 안전운전에 장애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도로교통공단에 수시 적성검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다’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계류 중이다.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지정돼도 운전자의 인권 문제 때문에 강제로 검사를 진행할 수 없다. 이번에 사고를 낸 박모씨의 경우 지난해 9월 수시적성검사 대상으로 편입됐지만 적성검사에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수시적성검사에 일정 횟수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시행하는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모든 정신질환자들의 면허를 박탈하자’는 식의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성완 전남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현병 환자는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면 충분히 회복해 운전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며 “약 복용을 중단하면서 위험해지는 신호를 파악해 적절하게 대처를 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고를 낸 박씨는 지난 3월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현재 보건소, 병무청, 보험개발원 등 11개 정부기관에 한정돼 있는 적성검사 의뢰 기관을 가족이나 의사 등 제3자로 확대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이나 경찰 등이 운전자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바로 경찰청에 수시적성검사를 의뢰하도록 해 판단력이 떨어진 운전자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