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을 공들여 추진하고 있어 (교육부도) 보조를 맞춰야 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가 3일 브리핑을 열고 설명한 ‘일본정부 역사왜곡 규탄대회’ 취소 사유다. 규탄 대회는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 3월 26일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초등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를 계기로 추진됐다. 초·중등 교육 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과 교육부 고위직인 교육청 부교육감 11명, 동북아역사재단 관계자 등이 이달 3~5일 독도를 방문, 규탄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언론 취재도 요청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달 초 일정을 취소하더니 느닷없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얘기를 꺼낸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낯선 모습에 솔직히 놀랐다. 독도하면 왠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2006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연설이 뇌리에 남아서인지 모른다. 연설은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로 시작해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 확립을 상징”한다고 독도 문제를 명쾌하게 규정했다.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명연설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건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청와대는 이 기념사를 “노 전 대통령의 독도 연설 ‘오마주’(경의와 존경을 담은 모방)”라고 했었다.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는 분쟁 지역도, 외교 협상 대상도 아니다. 역대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며 학생들에게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몇 달 전부터 준비해오던 정부 공식 행사를 취소하고 이런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표하는 행동은 그래서 낯설다. 불과 얼마 전까지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며 “친일 잔재 청산은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말하던 문재인정부 아니던가.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일본 측 요청을 수용한 것이든 우리 정부가 알아서 취소했든 굴욕적이다. 전자라면 일본의 부당한 요구를 관철 당한 것이고, 후자는 알아서 긴 것이 된다. 브리핑에 나선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이 지점에서 말을 얼버무린다. “우리 외교부는 어떤 메시지도 주지 않았다. 외교부에서 전체적인 (G20 정상회담 등) 외교 일정을 저희에게 알려왔고, (일정을 알려오는) 행간에 외교부 우려가 들어 있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익’을 위해 양해를 부탁했다. 한·일 정상회담은 G20 정상회담의 한 갈래로 추진되고 있다. 독도를 외교 테이블에 올려놓은 걸 다른 정상들이 알까 두렵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