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내부 문서 가운데 성윤모 장관이 최종 결재한 문서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대외비 문서라도 결재란 자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산 집행이 필요한 사업처럼 결재란이 필수로 붙어 있는 보고서라도 과장급이 전결(기관장 대신 결재하는 것)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장차관과 같은 정책 결정권자들은 보고만 받고 책임은 밑에 전가하는 형국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보고서 하나를 만들면 과장부터 국·실장, 차관, 장관까지 일일이 서명을 받아야 했다. 작성자는 결재란이 첫 장에 붙어 있는 보고서를 들고 상급자를 찾아다니며 설명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한 산업부 관계자는 5일 “윗분들이 내용을 수정하라고 하면 몇 번씩 표지를 떼서 붙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회고했다.
비단 산업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부처에서도 ‘결재의 추억’은 희미해지고 있다.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 담긴 보고서에서 고위직의 자필 서명이 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노무현정부 때부터라고 입을 모은다. 전자정부를 표방하면서 전자결재가 자리잡던 시기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이후로는 전자결재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4대강 사업이나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사업과 같은 후폭풍이 우려되면서 결재란을 없앤 것 아니냐는 게 관가의 시각이다. 문제가 불거져서 감사원이나 검찰 조사로 흘러갈 경우 자필 사인이 들어간 보고서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결재란이 없다면 보고서가 있더라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기는 힘들다.
관가에서는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한 번 형성된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여전히 이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과거와 달리 청와대 내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간섭이 세세한 부분까지 미치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장관을 필두로 ‘늘공’(늘 공무원)이 재량권을 지녔던 과거보다 간섭이 많아졌다. 청와대에서 지시하면 실행만 하는 입장인데 덤터기를 쓰기는 싫다는 인식이 퍼질 만한 상황이다.
한 전직 공무원은 “그래서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정책을 검토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일종의 책임을 대신 지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