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편향 논란, 의혹 당사자 소송전 등 찜찜한 뒷마무리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법무부와 검찰 스스로 과거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12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 위원들을 위촉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고통스럽고 힘들겠지만 ‘위원들의 열정’이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는 믿음도 전했다. 그렇게 진상규명의 책무를 띠고 출범한 검찰 과거사위가 지난달 31일로 1년5개월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검찰 스스로 과거 수사의 문제를 찾아 청산하겠다며 나선 첫 시도였던 만큼 과거사위를 향한 요구 수위는 높았다. 지난해 2월 처음 12건의 사건을 진상조사 대상으로 선정했지만 ‘장자연 사건’ ‘용산참사 사건’ 등에 대한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됐다. 결국 5개 사건이 2차 사전조사 대상으로 추가됐다. 지난해 8월에도 한 건이 더 추가됐다. 당초 6개월로 잡았던 활동기간은 4차례 연장돼 17개월에 이르는 동안 과거사위는 모두 17건의 검찰 수사 사건 기록을 들여다봤다.
과거사위 조사는 부당하거나 과했던 검찰 수사의 잘못을 상당 부분 드러내는 성과를 냈다. 강기훈 유서 대필,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에서다. 과거사위는 진상조사를 벌인 사건 중 8건에서 검찰이 피해자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해 3월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사과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른바 ‘별장 성접대 의혹’으로 관심을 끌었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에 대한 수사권고를 통해 검찰의 전면 재수사를 이끌어낸 것도 과거사위의 성과다. 수사권고에 따라 만들어진 검찰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뇌물·성범죄 혐의를 포착해 구속 기소했다. 2013, 2014년 검경 수사에서 두 차례 무혐의 처분된 이들은 이번 재수사로 처음 법의 판단을 받게 됐다.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았던 고(故) 장자연씨 사건에서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 조모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수사권고해 재판으로 이어졌다. 과거사위는 ‘장자연 리스트’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지만 당시 조선일보가 수사 외압을 행사했다는 정황 등을 밝혔다.
과거사위가 수사권고한 ‘남산 3억원 사건’ 역시 검찰이 수사해 당시 신한금융 관계자들 일부가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반면 성과에 대비되는 한계점과 문제도 컸다는 평가다. 사건 선정 단계부터 정치편향 등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강제수사권이 없는 조사단이 방대한 사건을 맡아 조사하면서 애초 ‘반쪽짜리’ 시작이 예상됐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3월 15일 김 전 차관이 조사단의 공개 출석 요구에 불응했던 일이다. 김 전 차관은 1주일 뒤 인천국제공항에서 태국으로 출국을 시도하다 긴급 출국금지 조치됐다. 사건이 자칫 미궁에 빠질 수도 있었다.
특히 검찰 과오가 처벌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실효성 논란도 컸다. 과거사위가 총장의 사과를 요구한 건은 전체 17건 중 8건에 달했지만 검찰권 남용, 부실 수사 등에 대한 징계·형사처벌로 이어진 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징계시효 3년이 모두 지난 탓이다. 김 전 차관 사건, 남산 3억원 사건 등 검찰 재수사로 이어진 사안들도 과거 부실 수사나 수사 외압 등 핵심 의혹 부분은 공소시효나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진상규명에 이르진 못했다.
한계를 가진 과거사위와 조사단이 여론의 요구에 의해 조사 대상 사건을 무리하게 추가해 과부하를 자초했다는 분석도 있다. 가장 많은 논란을 낳았던 장자연 사건과 용산참사 사건은 2차 조사 대상에 포함된 대표적 사건이다. 용산참사 사건은 조사 과정에 외압 논란이 일었다. 과거 검찰 수사팀은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사를 조사단에 밝히고 이에 일부 민간 조사단원들이 지난 1월 중도 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장자연 사건의 경우 과거사위와 조사단 간 갈등이 밖으로 분출됐다. 조사단원 다수는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하는 만큼 조사 기록을 검찰에 넘겨야 한다”고 과거사위에 최종 보고했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소수 의견에 따라 “장자연 리스트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고 최종 발표했다. 이에 조사단 총괄팀장을 지낸 김영희 변호사는 라디오에 출연해 과거사위 결정을 공개 반박하기도 했다.
과거사위와 조사단이 이원화돼 있었던 구조도 잡음의 원인으로 꼽혔다. 당초 개혁위는 과거사위 산하에 조사단을 둬서 지휘·감독을 받도록 권고했다. 의결기구인 과거사위와 실무조사를 맡은 조사단을 일원화해 효과적 조사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조사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과거사위는 법무부 산하, 조사단은 대검 산하로 이원화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불통’ 문제가 발생했다. 조사단은 과거사위가 조사에 간섭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과거사위는 조사단이 ‘깜깜이 조사 활동’을 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과거사위는 앞으로 한동안 후유증을 겪을 전망이다. 과거사위가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유착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최근 과거사위·조사단 관계자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용산참사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검찰 수사팀 역시 “(과거사위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의심을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보도자료에 담았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과거 수사가 세간의 의혹과 다른 결론으로 이어졌다는 이유로 재평가받는 것에 대한 검찰 내부 불만도 높았다. 다만 검찰 스스로 과거 사건을 재검토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평가도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과거사위 활동은 스스로 과오를 평가한 적 없는 검찰이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작업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 검찰 관계자는 “명백한 가혹행위나 수사 조작 등이 있는 과거사 사건과 달리 이번 검찰 과거사위의 조사 대상 사건 중에는 판단의 문제가 걸린 것들이 있다. 같은 기준으로는 과거사위의 결론 또한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번 경험을 통해 검찰 수사가 보다 신중해질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혹과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과거사위 조사 기록을 제대로 남기고, 문제로 드러난 수사 관행을 개선하는 작업이 보다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과거사위 관계자는 “법무부가 마련키로 한 백서 작업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비롯, 수사 관행과 관련해 제도 개선을 권고한 사항 등이 잘 이행되는지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창 조민영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