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 정보 등을 관리하는 포스(POS·Point of Sales)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은 주유소에서 화물차가 주유하면 유가보조금을 주지 않는 제도의 시행이 오는 9월로 3개월 미뤄졌다. 이달 5일 시행을 앞두고 전국 주유소들이 부랴부랴 포스시스템을 설치하려고 한꺼번에 나서면서 ‘공급 부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 내부에선 업계 사정을 봐주면 정책 신뢰도가 깎일 수 있다는 우려와 현실적 한계를 두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단 주유소들이 유가보조금 부정수급 근절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유예로 결론이 났다.
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화물차주들의 유가보조금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이달 5일부터 주유소의 포스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할 계획이었다. 유가보조금은 유류에 부과되는 세금 등의 인상액을 영세한 화물차주에게 사후 지급하는 제도다. 현재 ℓ당 308.88원을 준다. 혜택이 큰 탓에 보조금을 더 받으려고 갖가지 편법을 쓰기도 한다. 화물차주와 주유소가 공모해 실제 주유량보다 부풀려 결제하는 이른바 ‘카드깡’이 대표적 수법이다. 국토부는 유가보조금 부정수급액이 연간 최대 300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부정수급이 잇따르자 국토부는 지난 3월 화물차주가 포스시스템 미설치 주유소에서 유류를 구매하면 유가보조금을 주지 않겠다고 ‘초강수’를 던졌다. 대신 주유소들이 포스시스템을 설치할 여유시간을 3개월 주기로 했다. 그런데 국토부는 부정방지책 시행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지난달 29일 제도 시행시점을 9월로 연기한다며 ‘화물자동차 유가보조금 관리규정’ 일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가장 큰 이유는 포스시스템을 설치하려는 주유소가 지난달과 이달 들어 급증하면서 당초 시행일 이전에 설치작업이 끝나지 않는 주유소가 상당수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전국 1만1303곳 주유소 가운데 포스시스템 사용 주유소는 9152곳(80.9%)이다. 나머지 미설치 주유소 2014곳 중 1024곳이 설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설치 의향이 있는 주유소의 80% 이상이 제도 시행 직전인 지난달에서야 한꺼번에 설치 신청을 하면서 공급난이 발생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내에 포스시스템을 곧바로 설치할 수 있는 업체가 7곳 있는데, 이들이 모두 설치에 나서더라도 하루 최대 37곳에만 설치할 수 있다. 제도 시행 전까지 설치 작업이 마무리될 수 없어 제도를 3개월 유예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주유소들이 제때 나서지 않고 뭉그적거린 것을 정부가 봐줬다고 비판한다. 국토부 내부에서도 업계를 감싸주면 정책 일관성이나 신뢰도에 흠집이 생길 수 있으니 유예를 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 정책 담당자끼리 격론이 벌어질 정도였다.
국토부는 ‘정책 신뢰성’보다는 ‘현실적 한계’에 무게를 더 뒀다. 대부분 주유소가 영세업체이기 때문에 그대로 제도를 시행하면 타격이 큰 데다, 주유소협회 등 업계에서 유가보조금 부정수급을 없애기 위한 자구책을 내놓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국 주유소 대상으로 부정수급 방지 교육을 시행하고 포스시스템 설치를 유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제도 시행을 유예해 발생하는 피해보다 업계 자구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더 크다고 봤다. 오는 9월부터는 더 이상 유예 없이 곧바로 시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