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천안문 사태 희생자 공개하라” 중국 뼈 때린 美

입력 2019-06-05 04:05
중국 경찰관이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은 4일 베이징 천안문 마오쩌둥 초상화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날 천안문 인근 지하철역을 폐쇄하고 베이징 시내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등 통제 강도를 대폭 올렸다. AP뉴시스

미국이 ‘6·4 천안문 민주화 시위’(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은 천안문 사태를 ‘대학살(Massacre)’로 규정했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천안문 사태 사망자 수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정치구조를 둘러싼 마찰로 확전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시위를 막기 위해 철저한 내부 통제를 이어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3일(현지시간) 천안문 사태 30주년 성명을 통해 “중국인들의 영웅적인 항거를 기린다”며 “1989년 6월 4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천안문광장으로 탱크를 보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30년 전 사건은 여전히 우리의 양심과 자유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의 양심을 깨운다”며 “천안문 사태 이후 수십년간 미국은 중국이 국제사회에 통합돼 더 개방되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모든 것을 공개할 것을 중국 정부에 촉구한다”며 “이런 조치가 인권과 근본적인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공산당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작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미국을 겨냥해 “중국을 모독하고 내정간섭하는 일을 중단하라.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이들의 잠꼬대 같은 소리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공산당은 89년 6월 4일 천안문광장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총과 탱크로 잔인하게 유혈진압했다. 중국 정부는 당시 241명이 사망하고 7000여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지만, 사망자가 4000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만 주재 미국대사관 역할을 하는 미국재대만협회(AIT)는 천안문 사태를 ‘천안문 대학살(Tiananmen Massacre)’이라고 규정했다. AIT는 페이스북에 당시 대학생 시위자가 군중을 향해 양팔을 들어 올리는 사진과 함께 ‘왜 우리는 6·4를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미 프린스턴대 페리 링크 교수의 서사시를 올렸다. 그 아래에는 ‘천안문 30’ ‘천안문 대학살’과 ‘6월 4일’ 등의 해시태크를 달았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천안문 사태를 “평화적 항의자에 대한 대학살”이라고 논평했었다.

중국 정부는 예상되는 각종 시위를 차단하기 위해 전방위 통제에 나섰다. 천안문광장에 인접한 지하철역인 천안문서역은 폐쇄해 사람들의 통행을 원천 봉쇄했다. 검문검색을 하고 천안문광장을 들어갈 수는 있으나 오래 머무르면 공안이 퇴거 조치를 하고 있다. 베이징 주요 지역의 검문검색이 강화됐고 유흥업소는 이달 말까지 영업 중지 권고가 내려졌다. 중국에서 해외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가상사설망(VPN)도 최근 차단됐다. 유튜브나 트위터 등에 대한 우회접속까지 막고 있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나오는 천안문 사태 관련 질문과 답변은 홈페이지에 올리는 속기록에서 삭제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천안문 사태 30주년에 대해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오히려 청년들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장문의 기사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세계 각국에선 천안문 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랐다. 미국 워싱턴의 중국대사관 밖에선 수백명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홍콩에서도 저녁부터 빅토리아공원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대만에서도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추모집회가 열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젊은이들이 돈벌이에만 신경을 써 미·중 무역전쟁을 잘 알지만 천안문 사태 등 민주화에는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조민아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