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근신 중인 것으로 추정되던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53일 만에 북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냈다. 숙청설이 돌던 김영철 당 부위원장에 이어 김 제1부부장까지 공식 행사에 등장시킨 것이다. 이를 두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노딜’에 따른 내부 정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대내외 행보에 나서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지난 3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새로 구성된 대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개막 공연을 관람했다고 4일 보도했다. 김 제1부부장과 김 부위원장이 수행원에 포함됐다.
김 제1부부장이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53일 만이다. 이날 보도된 사진을 보면 김 제1부부장은 리 여사 바로 옆에 앉았다. 김 제1부부장이 김 위원장을 밀착 보좌하는 모습은 자주 포착됐지만 퍼스트레이디 옆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 서열이 훨씬 높은 리수용 국제담당 부위원장은 김 제1부부장 오른편에 앉았다. 이 때문에 두 달 가까운 공백 기간에도 불구하고 김 제1부부장의 정치적 위상이 오히려 더 높아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김 위원장이 20여일간의 공백을 깨고 이달 초 현지지도를 재개한 것과 상당 기간 공개 활동이 없었던 김영철·김여정 등이 다시 등장한 것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대내 정비를 마무리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김여정은 항상 대내외적으로 좋은 상황일 때 등장했다”며 “김여정이 다시 등장한 것은 김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대내외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고 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도 “대내 정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미국이 여전히 제재와 관련해 강경한 입장이라 김영철, 김여정의 재등장만으로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에 다시 나설 것이라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 자강도 시찰에서 부실한 교육시설 관리 상태에 대로했던 김 위원장은 3일 대집단체조 공연장에서도 화를 냈다. 조선중앙통신은 공연이 끝난 뒤 김 위원장이 공연 관계자들을 불러 작품 내용과 형식을 지적하며 그릇된 창작 기풍과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태도)를 심각히 비판했다고 전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6·12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앞두고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고 미국에 이른바 ‘새로운 계산법’을 재차 요구했다. 대변인은 “대화 일방인 미국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달린다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운명은 기약할 수 없다”며 “미국은 지금의 셈법을 바꾸고 하루빨리 우리의 요구에 화답해 나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마땅히 지난 1년간을 돌이켜봐야 하며 더 늦기 전에 어느 것이 옳바른 전략적 선택이 되는가를 숙고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통일정책비서관에 김창수 통일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을 임명했다. 김 신임 비서관은 광주 동신고와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노무현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행정관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 등을 역임했다.
최승욱 박재현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