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개조 소형 타워크레인 탓 3명 사망” 정부 방관이 사태 키웠다

입력 2019-06-04 19:12 수정 2019-06-04 23:36
서울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아파트 공사현장의 작동을 멈춘 타워크레인 위에 소형 타워크레인의 규격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4일 걸려 있다. 윤성호 기자

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은 평소와 달리 고요했다. 최근 지하 공사가 마무리돼 한창 건물을 올리느라 바쁠 시기지만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전날 파업에 나서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조종사 6명이 상공 60m 높이의 대형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시공사 관계자는 “크레인이 자재를 옮겨줘야 작업이 가능해 이틀간 공사를 쉬기로 했다. 노동자 700명 중 시공사 측 100명을 제외한 600명은 현장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현충일 전에는 파업이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노조원 한 명이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위에서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4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 1600여명은 소형 타워크레인의 안전 문제를 지적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뉴시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전국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크레인 1600여대가 운행을 멈췄다. 전국적으로 등록된 크레인 3000여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은 불법 개조가 만연한 소형 크레인의 안전 문제를 지적하며 ‘소형 크레인 폐지’를 요구한다. 건설업계는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라고 비판한다. 전문가들은 안전 문제를 방관한 정부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양대노총 소속 크레인 조종사들은 올해 사측과의 단체협상에서 ‘소형 크레인을 건설사와 계약하지 못 하게 한다’는 내용의 조항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3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나섰다. 유상덕 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 위원장은 “임금 인상 등 다른 요구사항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불법 개조된 소형 크레인 사고로 올해만 조종사 3명이 죽었다. 더 이상 목숨을 내놓고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소형 크레인은 조종석이 따로 있는 대형 크레인과 달리 무인(無人)으로 움직인다. 조종사는 기계 밖에서 리모컨으로 기계를 조종한다. 국가자격증이 필요한 대형 크레인과 달리 소형 크레인은 누구나 20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조종할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크레인 조종사 대부분이 양대노총 소속인 것과 달리 소형 크레인 조종사들은 비노조원이 많아 노사 갈등 문제가 적다. 임금도 낮아 공사업체에서 선호한다”고 말했다. 소형 크레인은 2013년 14대에서 지난해 1808대로 급격히 불어났다.

소형 크레인의 안전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오희택 경실련 정책위원은 “소형 타워크레인은 ‘인양하중이 3t 미만’이라는 규격 기준만 있다보니 단종된 장비나 여러 불량 부품들을 이용해 불법 개조된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우선 등록된 소형 타워크레인 599대를 전수조사한 결과 57%인 342대가 불법 개조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가 이달 말까지 관련 안전대책을 내놓는다고 했지만 노조는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소형 크레인 등록을 담당하는 곳이 국토부 산하 기관인데 한 대 등록에 30만원을 받는다. 그간 불법 개조를 방관한 게 정부”라고 했다.

다만 파업에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소형 크레인 사고 횟수는 공식 통계도 없다. 결국 양대노총 조합원이 비노조원에게 일자리를 뺏기기 싫은 것 아니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파업의 근본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고 봤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크레인 안전 문제 공청회에 여러 번 갔지만 국토부는 ‘잘 모른다’며 방관하기 바빴다.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려 노조가 임금 인상을 바란다는 식으로 프레임을 짜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토부는 “정부가 노사 단협에 개입하거나 소형 크레인을 폐지할 순 없다. 노조를 설득하면서 대체 인력 마련 등 파업 타격을 최소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안규영 이동환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