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연금고객 모시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고령화로 퇴직연금 시장규모가 급성장하면서 ‘황금어장’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마다 연금사업 부서를 격상하거나 별도로 두는 등 조직개편이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연금 수익률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KB금융지주는 지난달 그룹 차원의 연금사업 컨트롤 타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신한금융지주도 최근 계열사별로 뒀던 퇴직연금 사업부서들을 ‘매트릭스’ 체제로 개편했다. 협업하기 쉬운 구조로 개편한 것이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지난달 ‘연금손님자산관리센터’를 만들었다. 여기서는 가입자별로 맞춤형 연금 계획서를 추천해준다. 우리금융지주는 올 하반기에 ‘퇴직연금 자산관리 센터’를 신설할 예정이다.
금융권이 저마다 연금사업 조직개편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뭘까. 무섭게 불어나는 퇴직연금 시장 규모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90조원으로 전년(168조4000억원)보다 12.8%(21조6000만원) 늘었다.
한 시중은행 연금사업부 관계자는 4일 “연금가입 관련 문의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며 “금융권도 저금리 기조에서 순이자마진율(NIM)에 기대기보다는 연금운용 수수료 같은 비이자 수익성을 높이는 쪽으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이 선호하는 연금 상품은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다. DC는 가입자가 연봉의 12분의 1 이상을 매년 금융회사에 맡겨야 하는 연금 형태다. 수익이 나거나 손실이 나면 가입자의 퇴직급여도 달라진다. IRP는 퇴직 이후에도 퇴직급여에 더해 가입자가 금액을 추가로 적립해서 운용하는 연금이다. 업계에서는 두 유형 모두 가입자의 개인 정보와 투자 성향을 파악해 빅데이터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향후 연금 가입자를 자산관리(WM) 고객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은 것이다.
다만 저조한 수익률은 ‘옥에 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수수료 비용을 뺀 기준으로 1.01%에 그쳤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 정기예금 금리 1.99%보다 1% 포인트가량 낮다. 지난해 전체 적립금의 90.3%(171조3000억원)가 원리금보장상품(예금, 적금 등)으로 운용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올 초 금감원은 원리금보장 상품에 대해 가입자가 직접 자산비중, 갈아탈 상품 종류, 위험도까지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즉 가입자가 지정한 테두리 안에서는 금융회사가 가입자의 지시 없이도 상품을 변경하거나 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꼬’는 터주자는 것이다.
미국식 연금 운용 방식을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연금처럼 전문 위탁기관에 맡기는 형태다.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소 연구위원은 “가입자가 연금 운용에 소극적인 이유는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이라며 “전문기관에 위탁해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