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불인정 가해자에 공개사과문 처분은 위법”

입력 2019-06-04 19:01

대학 동기를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해 징계를 받은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데도 공개사과문을 게재하도록 한 학교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다.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판사 이동근)는 서울의 한 대학교 학생 A씨가 학교를 상대로 “징계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A씨 패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A씨 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14학번인 A씨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동기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3년간 일삼았다. 학교는 2017년 A씨에게 200시간 봉사명령과 공개사과문 게재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징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의 발언으로 피해 여학생이 상당한 성적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꼈고, 우울증을 얻는 등 피해가 가볍지 않다”며 학교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공개사과문을 게재하도록 한 처분은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고등교육법이나 대학 상벌규정에 공개사과문을 게재해야 한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또 설령 근거 조항이 존재한다 해도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공개사과 명령은 비행을 저질렀다고 믿지 않는 A씨에게 비행을 자인할 것을 강요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개사과문이 민·형사 소송에서 불리하게 사용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