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노조원 일자리 빼앗아 노조원 주라는 양대 노총

입력 2019-06-05 04:01
밥그릇 위해 전국 건설현장 멈춰 세운 크레인 노조… 이런 실력행사가 통한다면 “이게 나라냐”는 외침 나올 듯

전국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2500대가 한꺼번에 멈춰 섰다. 가동 중인 크레인의 70%에 달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의 타워크레인 조종사 노조가 기습 파업에 나서며 각 현장의 크레인을 점거했다. 무거운 자재를 고층으로 운반하는 이 장비가 멈추면 공사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는 이런 상황이 1주일만 지속돼도 1조원대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특히 아파트 건설현장은 입주 지연이 현실화할 경우 많은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양대 노총은 국민의 재산권을 볼모로 전국 건설현장을 멈춰 세웠다. 파업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떠나 비열한 행태다.

이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파업의 정당성을 더욱 인정하기 어렵다. 임금 인상을 내세웠지만 정작 현장에 내건 플래카드는 ‘소형 크레인 철폐’였다. 면허를 가진 조종사가 운전하는 대형 크레인과 달리 적재중량 3t 미만의 소형 크레인은 리모컨으로 작동되며 20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누구나 조종할 수 있다. 2014년 전국에 15대뿐이었는데 지난해 1800대로 늘어났다. 그 배경에는 두 노총 크레인노조의 횡포가 있었다. 민주노총 조종사를 고용하면 한국노총에서 몰려와 자기네 노조원을 쓰라며 시위를 벌이고 한국노총 조종사를 고용하면 민주노총이 몰려와 공사를 중단시키는 일이 반복되면서 건설사들이 어느 쪽도 아닌 소형 크레인 활용을 늘렸다. 이에 대형 크레인 일감이 줄어들자 아예 “소형 크레인을 쓰지 말라”는 요구를 꺼내든 것이다. 소형이 더 위험해서라는데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최근 5년간 크레인 사망 사고의 70%는 대형에서 발생했다. 소형 크레인을 조종하는 이들도 근로자다. 이번 파업은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두 노총에 달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런 막무가내 실력행사가 통한다면 그 사회에선 어떤 공정함도 기대할 수 없다. 분쟁 해결의 최선책은 대화와 타협이지만 원칙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할 때도 있는데, 이 사안이 그렇다. 여기서 원칙이 허물어지면 유사한 실력행사가 반복될 것이다. 어설픈 타협보다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며 불법 행위는 가장 무겁게 벌해야 한다. 조작이 간편한 소형 크레인은 일종의 자동화 기술이어서 이 문제는 4차 산업혁명과도 닿아 있다. 자동화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하는 흐름에서 보면 두 노총의 주장은 “신기술을 쓰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이런 갈등이 속출할 텐데, 매번 분쟁을 겪는다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구조적 변화를 어떻게 연착륙시킬지 본질적인 고민을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