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 먹구름 잔뜩 끼자… 기준금리 밑도는 국채금리

입력 2019-06-04 04:02

국내 채권시장에서 국채금리가 기준금리 아래로 내려가는 ‘역전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경기 변동에 민감한 채권시장이 ‘경기 먹구름’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높아지면서 미국에서는 장·단기 국채금리 ‘추월 현상’이 심화됐다. 채권시장이 경기 침체와 함께 기준금리 인하 필요성을 가리키면서 정책 당국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국채는 3일 기준금리를 밑도는 금리로 마감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이틀째다. 3년물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12% 포인트 하락한 1.575%를 기록하며 연저점을 갈아치웠다. 1년물과 5년물 금리도 연저점을 경신했다. 만기가 가장 긴 50년물 국채 금리는 0.014% 포인트 올랐지만(1.728%) 여전히 지난달 30일 금리(1.769%)보다 낮다. 장기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는 의미다.

장기 국채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는 이면에는 어두운 국내 경기가 자리 잡고 있다. 수출을 책임지고 있는 반도체는 하반기에 업황 회복이 예상되고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불확실성을 키우는 중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3개 연구기관은 최근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4%로 하향조정했다.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 전망에 힘이 실리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고 안전자산 수요가 늘면서 채권 가격이 오른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그림자’는 한국 국채에만 드리워진 게 아니다. 미국 국채 10년물에는 글로벌 경기를 둘러싼 의구심이 반영되고 있다. 전 세계 금융자산 중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3일(한국시간) 2.12~2.13%를 찍었다. 1주일 전과 비교해 0.2% 포인트가량 내린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하락세가 빠르다. 곧 2%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ING그룹은 이날 “세계적 불황의 두려움을 그간 간과했는데, 앞으로는 훨씬 덜 낙관하겠다”는 논평을 내놨다. 투자자들이 수익을 얻을 다른 자산을 찾지 못하고 안전자산에만 기대는 현상을 더욱 주목하겠다는 얘기다. 경기가 좋으면 미국 국채 10년물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높아진다. 현재는 투자자들이 채권을 사들이고, 대출을 포기하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떨어지는 속도는 3개월물 금리의 하락세를 추월했다. 경기 침체의 전조로 불리는 10년물과 3개월물 간의 ‘금리 스프레드’(장·단기 국채 금리차)는 지난달 23일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지난달 말 -0.16% 포인트까지 폭이 확대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 8월 이후 가장 큰 역전 폭이다.

국내외 채권시장이 모두 기준금리 인하를 외치면서 한은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선택지도 좁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반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본다. 연준도 글로벌 경기 우려를 무시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NH투자증권 강승원 연구원은 “1분기에 확인된 수출·설비투자·건설투자의 ‘트리플 부진’이 지속되며 7월 한은 수정경제전망에서 성장률과 물가 전망이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주언 이경원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