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제가 개편된다. 핵심은 상시적인 하계(7~8월) 할인이다.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철에 가정의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는 것이다. 대신 평소에는 기존 3단계 누진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정부는 사용량에 따라 할증 부담이 커지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조정 방안을 담은 3가지 대안을 내놨다. 세 번째 안(누진제 폐지)은 당정협의 과정에서 ‘불가’로 의견이 모아졌다. 남은 두 가지 중에 무얼 선택하더라도 각 가정의 여름철 전기요금 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최대 2874억원(가구당 월 1만142원)의 할인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재원 확보가 관건이다. 적자 상태에 빠져 있는 한국전력공사는 ‘하계 상시 할인’에 따른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이견을 보인다. 누진제 개편안을 확정한 뒤에도 상당한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누진제 민관 태스크포스(TF)는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3가지 개편안을 공개했다. TF는 여름철마다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불거진다는 지적에 따라 누진제 체계를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 지난해 12월 출범했다.
1안은 현재의 3단계 누진제를 유지하되 매년 7~8월에만 누진 구간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1단계 구간(월 사용량 0~200㎾h)에 적용하는 ㎾h당 93.3원의 요금을 300㎾h까지 매긴다. ㎾h당 187.9원 요금을 부과하는 2단계 구간(월 사용량 201~400㎾h)은 301~450㎾h로 바꿔 소비자 부담을 낮춘다. ㎾h당 280.6원을 내야 하는 3단계 구간도 401㎾h 이상에서 451㎾h 이상으로 조정된다. 이렇게 하면 지난해처럼 폭염이 찾아온 해의 7~8월에 1629만 가구가 월평균 1만142원의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평년(2017년 기준 7~8월)에는 1541만 가구가 월평균 9486원의 전기요금을 아끼게 된다. 1안의 경우 사용량과 상관없이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는 게 특징이다.
2안도 현재 3단계 누진제를 유지한다. 다만 매년 7~8월에 ㎾h당 280.6원을 부과하는 3단계 구간(월 사용량 401㎾h 이상)을 폐지한다. 2안대로 하면 폭염이 왔을 때 609만 가구(월평균 1만7864원)가 혜택을 받는다. 평년에는 385만 가구(월평균 1만4217원)가 할인 대상이 된다. 2안은 전기를 많이 쓸수록 혜택을 보는 불합리한 구조라는 맹점을 지닌다.
3안은 누진제를 없애자는 것이다. 전기를 얼마나 쓰든 ㎾h당 125.5원의 요금을 적용해 시장왜곡을 차단하자는 취지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500여명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80% 이상이 누진제 폐지를 원했다”고 말했다. 이 경우 1단계 구간에 들어가는 1400만여 가구의 전기요금이 오르게 된다. 3안은 정부의 선택지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다. 비공개 당정협의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많이 쓰는 이들은 혜택을 보고, 적게 쓰는 이들의 요금은 올라간다는 게 부담이다.
1안과 2안의 가장 큰 단점은 할인에 따른 재원이다. 1안의 경우 폭염 기준으로 2874억원, 2안은 1911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한전은 이걸 책임지기 부담스러워한다. 한전은 지난해 1조150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6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올 1분기에도 6299억원 적자를 냈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한전은 상장사인 만큼 주주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어떻게 개편되더라도 한전에 재무부담이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다르게 본다. 박찬기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은 “소요 재원은 한전이 공기업으로서 부담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도 국회 논의를 통해 일부를 부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달 안에 결론을 낼 방침이다. 오는 11일 공청회를 연 뒤 한전 이사회에서 약관 개정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산업부 전기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안을 도출한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