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누드모델 몰카’부터 가수 정준영의 ‘단톡방 몰카’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년간 관련 범죄는 11배 넘게 늘었다. 더 이상 신종 범죄로 볼 수 없게 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대법원이 객관적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며 각계 의견 수렴에 나섰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디지털 성범죄와 양형’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설정을 검토하기로 의결한 양형위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발표자인 백광균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사는 어떤 경우 형을 가중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백 판사는 촬영 장소가 집이나 화장실, 탈의실처럼 내밀한 사생활이 보호돼야 할 장소일 경우 죄를 더 무겁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느꼈을 감정이나 침해된 법익(法益)을 고려했을 때 일반적 상황에서의 촬영보다 죄질이 불량하다는 것이다. 또 성관계 및 용변을 보는 장면을 촬영하거나 알몸 등 성적으로 민감한 부위를 촬영했을 때도 가중요소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스마트폰 외에 손목시계와 같은 특수형태의 카메라를 이용했을 경우에 범행이 은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형을 가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 판사가 법원 내부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이용해 2018년 1월 1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 판결문 164건을 분석한 결과 촬영 장소는 지하철(59.1%)이 가장 많았다. 그다음은 집(12.8%) 숙소(9.7%) 화장실(6.1%) 순이었다. 촬영 수단은 스마트폰(92.6%)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소형카메라(3.0%), 손목시계(1.2%)가 다음으로 많았다. 실형 선고율은 10.0%로 높지 않았다. 벌금형이 46.3%, 집행유예가 41.1%의 비중을 차지했다.
다만 지난 10년간 실형 선고율은 조금씩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표자로 나선 김영미 변호사가 인용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및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형 선고율은 5.3%(2011~2016년)에서 11.1%(2017년)으로 증가했다. 반면 벌금형 선고율은 71.9%(2011~2016년)에서 54.1%(2017년)으로 20% 포인트 가까이 감소했다.
김 변호사는 형을 정하는 데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얼마나 이뤄졌는지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감경 요소로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며, 영상물이 온라인상에서 삭제될 수 있도록 노력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 판사도 “전통적 의미의 디지털 성범죄는 몰래 타인의 신체를 찍는 데 국한된 측면이 강하다”며 “피해 회복 관점에서 범죄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 취임한 김영란 양형위원장도 개회사에서 “고도화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돼 피해가 치명적”이라며 “객관적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