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문책을 당해 강제노역을 하고 있다는 설이 제기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3일 북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냈다. 51일 만에 공개석상에 등장해 그간의 숙청설을 잠재웠지만 위상은 예전보다 약화됐다는 분석이 많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김 부위원장이 지난 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부와 함께 군부대예술소조의 공연을 관람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사진에서 김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왼쪽 다섯 번째 자리에 앉았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51일간 주요 정치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지난달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장금철에게 통일전선부장직을 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숙청설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김 부위원장이 ‘하노이 노딜’ 문책으로 자강도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와병설도 돌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4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김 부위원장이 악성종양 제거를 위해 북한 지도층이 이용하는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 부위원장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는 4월부터 돌던 얘기지만, 정보 당국이 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김 부위원장의 활동이 공개됐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문책이 이뤄진 듯 그의 위상은 확실히 예전보다 떨어져 있었다. 노동신문은 이번 행사의 김 위원장 수행명단을 공개하면서 이전과 달리 김 부위원장을 당 부위원장 중 가장 마지막으로 호명했다.
하노이 회담 실무책임자였던 김혁철 국무위 대미특별대표는 회담 결렬로 총살형을 당했다는 설이 최근 제기됐으나,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 본부장은 “김혁철이 4월 13일에도 목격됐다는 정보가 있다”며 “이 정보가 맞다면 김혁철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정보 당국도 김혁철의 처형보다는 복귀에 무게를 두고 추적해 왔고, 현재까지 그의 신변과 관련한 특이점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빠인 김 위원장을 밀착 보좌해 오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 매체에서 자취를 감춘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현재 근신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4월 북·러 정상회담에 동행하지 않았고, 지난 1~2일 공개된 김 위원장의 자강도·평안남도 시찰에도 불참했다. 김 제1부부장 대신 현송월 선전선동부 부부장 겸 삼지연관현악단장이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에서 백두혈통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하노이 회담 결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남·대미 라인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동생(김여정)에게 자숙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제1부부장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승욱 박재현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