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공식 브리핑 사라지고 ‘아스팔트·길바닥 브리핑’

입력 2019-06-03 19:07
세라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백악관 업무동인 웨스트윙으로 통하는 북쪽 진입로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샌더스 대변인은 석 달 가까이 공식브리핑을 하지 않고 이곳에서 기자들과 간단한 질의응답 시간만 갖는다. AP뉴시스

미국 백악관에서 언론을 상대로 한 공식 브리핑이 사라졌다. 대신 길바닥·아스팔트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언론 역할을 무시하기 위해 길가 브리핑을 하는 것이라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불평이 백악관 기자들로부터 쏟아지고 있다.

세라 샌더스 대변인을 비롯한 백악관 고위관계자들이 별난 장소에서 비공식 브리핑을 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곳은 바로 백악관 북쪽 진입로다. 백악관 밖 도로에서 기자들이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에는 ‘제임스 브래디 프레스룸’이 있다. WP는 “백악관 진입로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브리핑을 위한 아주 좋은 공간이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 제임스 브래디 프레스룸은 먼지투성이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 버려진 블록버스터 비디오 가게 같다”고 묘사했다. 제임스 브래디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인물로 정신이상 판정을 받았던 존 힝클리가 레이건을 향해 총격을 가했을 때 총탄에 맞아 장애를 갖고 살다가 숨졌다. 그런 인물의 이름을 딴 공간이 방치돼 있는 것이다.

샌더스 대변인이 브리핑룸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83일 전이다. 이는 기록적인 기간이라고 WP는 전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이전에도 43일 동안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권력의 정점인 백악관이 이러니, 미 국방부와 국무부도 언론 브리핑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도 백악관 남쪽 뜰에서 전용헬기 ‘마린원’의 프로펠러가 시끄러운 소음을 낼 때 기자들을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고 WP는 꼬집었다.

길바닥 브리핑 장소가 백악관 북쪽 진입로가 된 것은 사연이 있다. 샌더스 대변인이나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 등이 친(親)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와 그곳에서 인터뷰를 하고 백악관 웨스트윙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것을 기자들이 붙잡아 질문을 던지면서 길바닥 브리핑이 일상화됐다. 방송사들이 핵심 관계자들을 잘 찍기 위해 길바닥에 연단이 설치되는 일도 있다.

언론 입장에서 길바닥 브리핑의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다. 예정된 일정이 아니라서 갑자기 열리고, 주제도 없으며, 빨리 끝난다는 것이다. 소음을 핑계로 백악관 관계자들이 쉬운 질문에만 답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추가 취재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기자가 취재원과 신뢰를 쌓기도 힘들다. 기자들 사이에선 트럼프식 언론 통제 수단이라는 원성이 높지만 백악관이 언제 길바닥 브리핑을 중단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