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고통 기록… “삶과 죽음 어느 것이 더 무서운가”

입력 2019-06-03 19:19

사랑과 고통을 시(詩)라는 형식에 기록해온 최문자(76·사진)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민음사)를 냈다. 여기에 수록된 시 60여편을 쓰는 동안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시인은 혼자 수술대에 올라 폐를 잘라냈다. “삶과 죽음 어느 것이 더 무서운가”(‘2014년’)를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어느덧 희수(喜壽)에 이른 최 시인을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책 어느 페이지에서 나는 맨드라미 냄새/ 피 없이도 피가 가득했다’는 시 ‘맨드라미 책’에 대해 물었다. 그는 “붉은 맨드라미는 내가 추구한 환상의 삶이다. 시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현실을) 버티는 힘이었다. 피 흘리지 않고는 평안하게 되는 건 없더라. 나는 평생 시를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시를 버렸으면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1970년대 일찍 문단에 나왔지만 오랫동안 시를 쓰지 못한 때가 있었다. 최 시인은 “애 셋을 낳고 석박사 학위를 하느라 너무 바쁜 시절이었다. 50년, 아니 그 이전부터 시를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는데 한 줄도 못 썼던 당시의 불행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젊어서 시를 많이 못 써서 그런지 아직도 시를 쓸 에너지가 있어서 좋긴 하다”며 웃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후회스러운 청춘이 지나간” 길을 돌아보고(‘비누들의 페이지’) 남편의 유해를 바다에 뿌리고(‘가난한 애인’)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 세상”을 참회한다(‘재’).

크리스천인 그는 이번 시집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부른다. “하나님은 내 시의 근원이지, 함부로 문학에 사용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에 가볍게 올려놓기 싫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경험이 시인의 시를 전능자에게로 이끈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그는 신앙 에세이를 쓸 예정이다. 또 실험적인 시집도 구상 중이다. “문단에는 전통적 서정파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전환파가 있는데 나는 후자를 지지한다. 내 마지막 시가 패러다임 교체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바란다”고 했다. ‘나무고아원’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사과 사이사이 새’ 등을 낸 시인은 박두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협성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총장을 역임했다.

글=강주화 기자, 사진=서영희 기자